수년 전부터 원인 모를 우울증에 시달려온 30대 초반의 직장여성 김모씨.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약물치료 등을 받았으나 차도가 없자 최근 최면요법으로 정신질환을 고친다는 신경정신과의원을 찾았다. 그는 의사가 최면을 걸자 화가 난 임금의 붉은 얼굴과 사약을 마시는 자신의 모습, 궁정의 뜰에서 놀고 있는 서너 살된 아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런데 임금의 얼굴은 자신을 몹시 괴롭히는 직장상사였고, 아들은 지금의 남편이 아닌가.의사가 최면상태에서 연도를 물으니 1, 4, 8, 2라고 대답했다. 1482년은 폐비 윤씨가 성종에게 사약을 받고 사망한 해. 이 환자가 진짜 폐비 윤씨라면 전생(前生)에서 본 아들은 연산군인 셈이다. 최면요법으로 전생의 기억을 되살린 뒤부터 김씨의 우울증은 씻은듯 사라졌다. 그의 우울증은 죽음을 겪으면서도 영혼에 아로새겨져 있던 비극적인 전생의 경험이 원인이었던 것이다.
95년 환자를 최면상태로 이끌어 전생의 기억을 되살림으로써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영우박사는 『김씨의 우울증이 사라진 것은 전생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가 발산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최면요법은 미국 의학협회가 58년 정신의학 분야의 공식적인 의료기술로 인정했으며, 미국 영국 호주 등에서는 매년 수백 편의 관련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 정신질환은 물론 난치병인 아토피피부염, 성기능장애, 요실금, 만성 골반통, 입덧 등에 효과가 있다는 보고도 잇따르고 있다. 국내서도 김박사를 비롯해 소아과·내과·산부인과 등 30여명의 전문의가 최면의학 연구모임인 「한국 임상 및 실험최면연구회」를 조직해 활동하고 있다.
김박사는 『「최면상태」란 뭔가에 정신이 팔려 멍해진 것처럼 긴장이 풀린 상태를 말한다』며 『이런 상태에서는 의식적인 긴장감과 경계심이 줄어들어 마음 속 깊은 곳의 무의식에 저장된 내용들이 표면으로 떠올라온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면상태에서는 여러 가지 암시와 지시도 더 쉽게 마음 깊은 곳에 스며들기 때문에 나쁜 습관을 바꾸는 것은 물론 술이나 담배를 끊고 질병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박사는 실제로 우울증, 편집증, 비만증, 구토증, 무릎통증과 같은 난치병을 최면요법으로 치료하고 있다. 물론 최면요법이 만병통치의 마술적 치료법은 아니다. 정신질환의 경우 전통적인 정신분석이론에 입각한 정신치료와 약물요법으로 호전되는 환자가 더 많은 게 현실. 하지만 다양한 치료에도 불구하고 원인조차 밝혀내지 못하는 경우엔 최면요법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최면상태에서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고 난 환자들은 증상이 호전되는 것은 물론 세상과 주위 사람들을 한층 폭넓고 여유있는 시각에서 바라보며, 생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최면 전문가인 신구대 경영학과 김영국교수는 최근 그림최면을 이용해 살을 빼고 담배를 끊는 방법을 소개해 관심을 끌고 있다. 그는 성인 남성 13명에게 그림최면을 시도한 결과 11명이 한 달 이내에 담배를 끊었다고 밝혔다. 암시를 주기 위해 그림을 이용하는 것일 뿐 일반 최면요법과 원리는 비슷하다.
김교수는 『우리가 아무리 이성적으로 담배를 끊으려 해도 잠재의식(본능)이 움직여주지 않는 한 도로아미타불』이라며 『무의식적인 최면상태에서 암시를 주면 본능의 영역이 100% 받아들여 금연 욕구가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고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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