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교 수행평가가 표류하고 있다. 실시한 지 1학기도 지나지 않아 베껴내기가 판을 치고, 구체적인 평가항목과 기중이 마련되지 않은 데다, 등급식 상대평가로 인해 학생간 변별력도 거의 상실해 제도시행 취지가 무색해졌다.특히 더구나 수행평가를 밀착 지도하고 학교에 제출할 자료까지 만들어 주는 보습학원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제2의 과외과목」으로 변질되고 있다.
평가등급을 A,B,C 3단계로 나누고 있는 서울 D고교. 학생들이 낸 과제물의 70~80%는 내용이 거의 대동소이하다. 장모교사는 『남의 것을 베껴 내는 학생이 대부분이고 남의 과제물을 통째로 복사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베껴내도 B등급을 줄 수밖에 없고 등급간 점수차도 1~2점에 불과해 변별력이 거의 없다』고 털어 놓았다. 강남의 한 중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베낀 학생이 도리어 점수가 더 높게 나왔다』며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강북지역의 J중학교는 기본점수(100점 만점중 70점)이하를 줄 경우 교장에게 사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이학교 왕모(24)교사는 『사유서를 제출해야 한다면 과제물이 아무리 무성의해도 누가 70점이하를 주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수업태도를 수행평가에 포함시키면서 졸거나 잡담하는 학생들을 적발해 벌점을 주는 웃지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더구나 교육청은 일선 학교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자 5월초 수행평가 실시여부와 방식을 각 학교가 알아서 결정하라고 지시, 혼란을 가중시켰다. 대전의 한 고등학교는 학기중간까지 실시한 수행평가를 모두 백지화하고 신문사설 스크랩만으로 거의 전원에게 만점을 주었다.
보습학원으로 인한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강남 일대 학원들은 수행평가 과제를 미리 입수, 같은 학교 학생 수십명을 한반에 모아놓고 수행평가 지도는 물론 자료검색과 리포트 내용수정까지 대행하고 있다. 강남의 J고교 구모(35)교사는 『고등학생이 쓴 것이라고 보기 힘든 유사한 리포트들이 많아 추궁하니 주변 S학원에서 대부분 자료를 만들어 준 것으로 드러났다』며 『학원에서 교사-학생간 영어인터뷰까지 예상문답지를 만들어 줬다』고 분개했다.
강동구의 D보습학원 강사 임모씨는 『수행평가 지도를 하지 않으면 학생이 모이지 않을 정도』라며 『간단한 과제물은 모범답안을 불러주고 기본자료도 만들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전교조 관계자는 『창의력을 키우고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실시된 수행평가가 교육당국의 무성의로 기본취지를 상실한채 교사들이 학생들의 짐만 무겁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배성규기자 vega@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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