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너무나 힘들고 고단할 때. 사람들은 어떻게 표현할까. 「레이닝 스톤」(Raining Stones)의 주인공 밥(브루스 존스)는 이렇게 말했다. 『마치 하늘에서 돌이 비처럼 쏟아지는 것 같습니다. 오직 나에게만…』영국 맨처스터에 사는 밥은 실업자다. 엔지니어 경력 30년인 그의 친구 토미역시 실직했다. 90년대초 영국의 구조조정이 낳은 희생자들. 이미 「브래스트 오프」「풀 몬티」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희극적 역설로 보여주었다. 밥 역시 다르지 않다. 들판에서 어렵게 훔친 양 한마리도 죽이지 못할만큼 서툴고 순진해 그 우스꽝스런 가난의 아픔이 더욱 비극적인.
차라리 분노라도 있었으면. 그러나 그는 고물승합차를 도둑 맞아도, 신부가 그의 하수도 청소를 자원봉사로 생각해도, 노동당 토지위원이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어겨도 『실업자가 짐승이냐』 『개혁 좋아하네』라고 빈정거리는 정도가 전부다. 당장 끼니가 걱정인 그가 일곱살 난 딸 콜린(제마 피닉스)의 성찬식에 새 드레스를 사 입히겠다고 고집한다. 아내가 작년 옷을 그냥 입히자고 해도, 신부가 학교서 빌리자고 해도 그는 단호히 거절한다.
100파운드가 넘는 드레스 값을 마련하기 위해 밥은 나이트클럽 안전요원, 아내는 봉제공장에 나가보지만 양심과 경험 부족으로 하루도 못 버티고 쫓겨난다. 그래도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에게도 딸을 최고로 만들어 주려는 아버지의 간절한 사랑이 있고, 지켜야 할 자존심이 있다. 악덕 고리대금업자가 그것을 짓밟으며 아내와 딸을 협박하자 참지 못하는 아버지.
그의 분노는 정당하다. 사람을 죽여도 죄가 아니다. 『난 부지런하고, 하나님도 잘 믿는데』라고 말하는 밥에게 『왜 자유와 행복을 희생하며 살아, 죄가 없네』 『빵이 곧 삶인 사람들을 위해 정의를 행한 것』이라고 감싸주는 신부는 다름아닌 켄 로치 감독 자신이다. 최소한의 삶과 자존심마저 무너뜨리는 사회에 대한 저항과 폭력은 정의를 행한 것이란 시각으로 강렬하고 설득력있게 포장된다. 더구나 딸을 위한 아버지의 간절한 사랑이라면. 그러나 그런 감동과 희망도 실은 공허하다. 극장을 나서는 순간 역시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작. 17일 개봉.
오락성 ★★★☆ 작품성 ★★★★
한국일보 문화부 평가 ★5개 만점,☆은1/2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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