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정달영칼럼]'산소같은 사람' 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정달영칼럼]'산소같은 사람' 둘

입력
1999.07.09 00:00
0 0

논란과 관심도에 있어서 「전국민적」인 사안들이 꼬리를 문다. 정부와 당사자와 국민들 사이에 심각한 혼선을 불러오고 있는 「삼성차 처리」도 그 중의 하나다. 투자자와 정부에는 더없는 낭보이지만 객장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서민들에게는 박탈감을 안길 수도 있는 「주가 1,000 돌파」 역시 예삿일은 아니다.어디 그 뿐인가. 「특검제」를 둘러싸고 제자리를 맴도는 여야의 신물나는 정쟁, 유치원 어린이등 20여명의 죽음을 부른 「청소년 수련원 화재」도 그 사이 지면을 덮어온 뉴스들이다.

참으로 공교롭다고 할 것은 이러한 몇몇 일들이 김대중 대통령의 정상외교 나들이에 중첩되어, 바쁜 일정속에서 힘들게 일궈낸 외교성과를 자칫 가려버리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지난번 러시아_몽골 순방 때는 옷로비 의혹으로 국내가 들끓었는데, 이번에도 공항에서의 귀국회견을 대통령은 상당부분 「내치」에 할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화려한 미국·캐나다 외교무대에서 돌아온 바로 그날 부산에서 벌어진 「김대중정권 규탄대회」는 대통령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이었을 것이다. 길 떠나기 전에도 이미 국민들 앞에 무릎꿇어 사과까지 마지 않았던 대통령이 아닌가.

그런데 여기, 어지러운 세태 한가운데에 마치 산소같은 청량감을 준 「두 사람」이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될는지 모른다. 「전국민적인 수준」의 관심사들에 밀려 비켜갔지만, 이들은 그같은 일들로 불거진 온갖 편법과 무원칙과 부도덕의 문제에 극명하게 대조되기 때문에 돋보인다.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특별검사였던 조영황 변호사가 그 하나이고, 불탄 청소년수련원의 허가당시 담당공무원인 화성군청의 이장덕 계장이 그 둘이다.

중졸 학력에 29세까지 고향에서 힘들게 살다가 독학으로 사시에 합격했으며 판·검사 거치지 않고 변호사 외길에서 시민운동에 봉사했던 조영황씨는 29년간의 변호사 생활을 홀연히 접고, 고향인 시골의 시군판사를 자원했다.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닌 나 자신의 인생일 뿐이다. 시골노인으로, 작으나마 봉사하는 삶으로 돌아가고자 한다』는 것이 60을 앞둔 그의 귀거래사.

97년 12월 씨랜드청소년수련원의 허가신청을 접수했던 이장덕 당시 부녀복지계장은 그 허가건으로 겪었던 「악몽같은 나날들」의 기록을 공개함으로써 대참사의 원인이 된 공무원사회의 부정과 비리를 과감하게 고발한 결과가 되었다. 업자로 부터 전달된 50만원 봉투를 과장에게서 억지로 받아 다시 반송한 날, 그는 『굶어 죽어도 그런 돈은 받고 싶지 않다』는 기록을 남겼다.

월급날 「용돈」을 요구한 과장에게 10만원씩의 갹출을 할당받았을 때에도 『우리가 봉급타서 왜 과장 용돈주나』고 그는 썼다. 그가 이런 기록들을 남긴 것은 자신이 경험한 공직사회에 대한 회의를 『훗날 책으로 쓰겠다』는 생각에서 였다고 한다. 그는 지금 39세의 주부다.

이들에게서 드러나는 덕은 단연 「마음의 가난」이다. 삼성차 처리 과정에서 돌출했다고 볼 수 있는 재벌일가의 변칙적인 증여와 상속, 특히 엄청난 사재를 출연한다고 하면서도 상장을 하게 되는 경우 재산을 더욱 증식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이른바 「상장 빅딜」론 앞에서 놀라움과 절망을 감추지 못하는 국민들은 지금 시선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 것인지 조차 모르는 형편인 것이다.

삼성차 처리의 핵심은 외형적으로는 「경제논리」와 「적법절차」이다. 원칙을 벗어난 정치적 배려가 끼어들수록 처리는 혼선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논리와 절차 이전에 중요한 대원칙이 있다. 그것은 사회정의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1835~1919)는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간 것과 같은 「부자의 복음」을 실천한 인물로 일컬어진다. 50넘어 얻은 외동딸과 미망인이 있었으나 그는 그들에게 「넘겨 준」재산이 없었다고 한다. 『그만한 부자도 없었고 그만한 자선가도 없었다』는 그의 신념은 『부는 소유하는 게 아니라 선하게 관리하는 것』이었다. 그는 헤이그의 평화궁을 건립한 평화운동가로도 역사에 남는다.

『돈이 행복을 증진하지 못한다. 행복을 앗아갈 때가 많다. 백만장자에게는 웃음이 적다』는 명언을 그는 남겼다.

우리의 재벌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는 가르쳐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