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기업 기아자동차를 살려야 한다』97년7월 부도유예협약으로 시작된 「기아사태」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지고 있었다. 「부실기업」 기아는 하루아침에 「국민기업」 「지역차별의 희생기업」으로 둔갑했고, 대선에 쫓긴 정부는 이같은 맹목적 상황왜곡에 한없이 무기력하기만 했다.
한국경제는 정치논리와 지역감정이 원격조종하는 기아자동차에 매달린 채 이리저리 질질 끌려다녔고,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의 수렁에 함께 빠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꼭 2년이 지난 지금 기아의 망령은 삼성자동차의 몸을 빌려 되살아났다. 「부실기업정리」라는 사태의 본질은 사라진 채 기아자동차가 「영남정권하의 호남기업」문제로 변색됐듯 삼성자동차 역시 이미 「호남정권시대의 영남기업」 이슈로 변질됐다.
사업성 평가나 채권단 판단은 생략된 채 『공장문은 닫지 않는다』는 결론부터 내려지고, 옷에 몸을 맞추듯 결론에 맞는 절차를 찾아가는 「한국형 부실기업정리방식」이 또다시 재연되고 있다.
대선을 5개월 앞뒀던 기아차 정국과, 총선을 9개월 후 치러야하는 삼성차 정국의 상황적 유사성 때문일까. 해당지역이 들끓고, 정치권은 편승하고, 정부도 화답을 거부하지 않는 「선거전 대마불사(大馬不死)」원칙은 달라진게 없다. 기아의 실패로 그토록 호된 IMF체제를 겪었는데도 말이다.
삼성차는 부산기업이기에 앞서 부실기업이다. 이미 꼬일대로 꼬였지만 부실기업을 부실기업으로 처리하지 못해 전국민이 끔찍한 대가를 치러야 했던 2년전의 행적을 복기(復碁)해보면 삼성차의 해법은 쉽게 나올 수도 있다.
/이성철 경제부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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