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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미스 총기난사 왜.."외국인 너무 많다" 적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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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미스 총기난사 왜.."외국인 너무 많다" 적대감

입력
1999.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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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독립기념일 연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증오의 연쇄 살인극은 왜 일어났을까. 단서는 범인 벤자민 스미스의 성격과 과거 행적.그는 벤자민이라는 이름이 『너무 유대인같다(too Jewish)』며 이를 어거스트로 바꾸었을 정도로 반유대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또 그가 만든 전단에는 『왜 흑인학생모임은 있는데 백인학생모임은 안되는가』라고 묻고 있다. 아시아계에게는 『진흙같은 인간들(mud people)』이라며 더욱 경멸적인 언사를 썼다.

그는 범행이전 한 인터뷰에서 유대인과 흑인, 아시아계에 대한 적대감이 대학에 입학한 뒤 생겨났다고 고백했다. 의사인 아버지와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어머니를 둔 그는 96년 어배나에 있는 일리노이대에 입학, 최고급 기숙사인 알랜 홀에 들어갔다. 그러나 대학입학후 주변에 외국인 교수와 학생들이 너무 많다는데 불쾌한 감정을 갖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즈음 신나찌 작품들을 접했고, 백인우월주의를 교리로 하는 세계창조주교회의 지도자 매튜 헤일을 만났다.

그는 반흑인, 반유대, 반소수인종을 주장하며 「침묵하는 다수 백인」을 대변한다는 「신념」을 가졌지만 이로인해 「시련」을 겪었다. 그의 생각에 반대하는 여자친구를 구타해 대학경찰에 끌려갔고, 친구들과도 자주 싸웠으며 , 결국 학교 당국의 퇴학조치를 앞두고 자퇴했다. 98년 블루밍턴의 인디애나대학으로 옮긴 그는 2,000장의 「위대한 백인」이라는 유인물을 자동차에 붙이는 등 반소수인종 운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이로인해 지난해 11월 500명의 블루밍턴 주민과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고, 이 시위에 혼자 맞서기도 했다. 이때 그가 들었던 플래카드에는 『증오의 표현을 할 수 없다면 언론의 자유도 없다(No hate speech means no free speech)』라고 적혀있었다. 그의 집 유리창은 이때부터 일주일에 한번씩 박살났다.

그는 올해 4월 일리노이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려는 해일을 위해 증언대에 섰다. 그러나 주위원회는 해일의 백인우월주의를 이유로 변호사 자격을 주지않기로 했다. 이 최종결정이 내려진 게 바로 2일. 그가 총을 들고 자신에게 시련을 주었던 곳을 차례로 돌아다니며 총기를 난사하기 시작한 날이다.

/박정태기자 jt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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