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또 시들하고 말면 아이들의 죽음이 너무 억울합니다』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참사 유족들이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위해 직접 소매를 걷고 나섰다. 사고대책본부등 관계당국의 안이한 사후수습과 국과수의 미진한 화인발표를 더이상 두고볼수 없다는 분노에서다.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강동교육청 2층 한켠에 사무실을 마련한 유족들은 5일 고석(高錫·37)씨를 위원장으로 집행부를 구성,자체 사고수습에 발벗고 나섰다.
7명의 유족들이 총무, 조사부, 통계부로 일을 분담, 집행위원을 맡았고 희생자당 한명씩 23명의 유족들이 유족회 회원자격을 나눠가졌다. 화재원인 규명, 통신을 통한 여론조성, 시민단체 연계 등 3가지 활동방향도 잡았다.
고가현·나현 쌍둥이 남매의 이모부 황천식(黃千植·31)씨는 『몇년이 되든 반드시 진실을 밝히겠다』며 학업(삼육신학대)도 잠시 놓았다. 황씨는 기자회견문과 사건의문점 등을 4대통신과 인터넷에 올리고 통신과 전화를 통한 제보 수렴을 맡았다. 실제로 한 소방공무원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통신상에서 지적한 현장 의문점은 유족들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조사결과에 문제를 제기하는데 참조자료가 되기도 했다.
『건축일에 써먹던 거라고 높은 양반들이 인정 않더라도 끝까지 해볼겁니다』 배한슬의 큰아버지 이자 30년 경력의 전기배선 기술자인 배상헌(裵相憲·44)씨는 사건현장에서 타다남은 전선을 수거해오는가 하면 현장의 전기배선상태를 촬영해와 동료들에게 돌려보이며 화재가 모기향때문이라는 국과수의 발표를 반박하기위해 안간힘을 쓰고있다.
부위원장 김성하(金聖夏·33·회사원)씨는 참여연대 경실련 등에 끈을 대고 있다. 전문가들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는 시민단체의 협력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과거 대형참사의 사후수습 사례를 모으고 이번 사고 수습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총무 이상학(李相學·34·운송업)씨의 몫이다. 또 있을지 모를 대형참사에 선례를 남겨두기 위해서다.
『이런 슬픔이 다시 없다는 전제하에서 유족회는 일단 3년간의 활동기간을 정해두고 있습니다』 쌍둥이 자매를 먼저 보낸 위원장 고석씨는 유족회가 대형참사 재발방지에도 앞장서겠다며 『유족들의 힘은 비록 미약하지만 똘똘뭉쳐 바위를 뚫겠다』는 결연한 각오를 밝혔다. 고씨는 명인제약의 영업부서에 근무하는 평범한 회사원이나 어느새 투사로 변해있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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