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가 하는 이야기레이몬드 카버 지음·집사재 발행
지난 주 화성의 한 수련원에서 일어난 일은 우리 모두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딴 생각을 하다가도 그 어린 생명들에 대한 상념 속으로 어느새 빠져들어가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부모의 상심은 어떠할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하던 일을 다 놓고 어딘가 사람들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어루게 된다. 하지만 이런 현실회피가 가능한 공간이 어디에 있으랴. 집도 일터도 다 우리가 필요해서 생긴 공간이고, 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럴 때 나는 짐을 꾸리고 집 문을 잠그고 또 고속버스나 기차에 오르는 대신 작은 나의 서재로 문을 닫고 들어앉게 된다. 오래도록 읽으면서 많은 담화들을 쟁여놓은 친구 같은 책을 펴든다.
레이먼드 카버의 이 책은 제목부터가 시사적이다. 또다른 책의 제목은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줘」이니, 내밀한 마음의 곳간을 방문해보고자 하는 내방객에게는 안성마춤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부드럽고 수식이 많아 무슨 사랑에 대한 달콤한 변주곡 같은 이야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실망만을 안겨줄뿐인 것이 또 이 카버의 단편소설들이다.
미국의 안톤 체홉으로 불리며 80년대 미국의 단편소설의 부흥을 가져온 이 작가의 책들은 그야말로 고통의 서이다. 표제작은 두 부부의 이야기로 각각 이혼의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이 서로의 사랑에 대해 나누는 대화를 모은 것이다. 카버의 글은 작가의 사랑론이 아니라 바로 글을 읽는 사람의 사랑에 대한 상념을 어느새 읽고 있게 만든다. 그의 카버의 소설은 진중한 삶에 대한 사유들을 수채화처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카버를 읽으며 우리의 삶을 읽는다. 어른들의 잘못 때문에 생명을 앗긴 어린 생명들을 생각하면 이런 책읽기가 무슨 소용이랴. 한낱 회의가 가슴을 친다. 새삼 이들의 명복을 빌며, 어린것들을 잃은 부모들의 마음을 신이여, 어루만져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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