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세상을 이어주는 길. 영화는 그 위를 지나는 무수한 인생들을 따라간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에서 송화(오정해)와 유봉(김명곤)과 동호(김규칠)가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구불구불한 산길을 내려온다. 그들은 그 길에서 소리의 상실과 방황의 아픔을 역설(신명)로 풀어낸다.그 길은 그들 만이 지나갈 뿐이다.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에서 가족이 떠나는 마지막 언덕길. 갈 지(之)자로 굽은 길을 소달구지가 삐걱거리며 지나갈 때 우리는 그들이 다른 세상을 꿈꾸지만, 그 길은 결코 기쁨이나 희망의 통로가 아님을 안다.
독일영화 「노킹 온 더 헤븐스 도어」에서 두 청년은 천국을 향해 바다로 질주하고, 「밴디트」에서 4명의 여죄수는 자유를 향해 달음박질친다.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는 그들은 새로운 길을 찾지만 망망한 바다 앞에 서게 된다. 그 마지막 길을 버리는 순간 그들은 세상을 포기한다.
「델마와 루이스」의 주인공에게, 스페인 여자 안나(「안나 이야기」)에게 길떠남은 남성중심의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저항이다. 그들은 그 길에 침을 뱉고, 총을 쏜다. 그러나 그 길위에 있는 한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탈출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길을 박차버리는 죽음을 선택한다.
수많은 로드 무비가 길위에서의 절망과 아픔을 이야기한다. 로드 무비의 고전인 데니스 호퍼 감독의 「이지 라이더」에서 두 청년이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그 길도 미국사회의 부조리로 이어진 공간이고, 길은 그것을 깨려는 젊은이의 이상과 야망을 무참히 부셔버린다.
그래도 영화는 늘 그 길에서 꿈을 꾼다. 숭고하고 진실한 삶과 희망을 찾는다. 「내 친구 집은 어디인가」 「올리브나무 사이로」 「체리향기」에서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무심히, 끈질기게 찾아가는 길고 가느다란 언덕길, 지진으로 무너진 길, 올리브 나무숲으로 난 풀밭 길. 「그래도 그곳에 삶은 계속된다」고 믿는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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