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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종교] 나를움직인이한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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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종교] 나를움직인이한구절

입력
1999.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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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작가 김정수79년에 나는 서른살이었다. 74년에 결혼하고, 75년에 임신으로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고, 76년에 첫아이, 78년에 둘째 아이를 낳고 보니 서른살이 되어 있었다. 지금 서른살 여성을 보면 어린애 같아 보이는데 그때 내 심정은 막다른 골목으로 쫓겨가고 들어간 심정이었다.

산문정신으로 무장된 빛나는 단편작가가 되고 싶었던 어릴 때부터 유일하던 내 꿈은 현실과 너무나 멀어져 있었다. 나는 아침마다 남한산성에서 뜨는 해를 바라보고 우울해했고 저녁이면 대모산 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남몰래 한숨을 쉬곤 했다. 나는 그때 다른 사람도 아닌 내 남편에 대한 질투로 힘이 들었다.

그는 그때 힘든 상황에서도 학위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아침부터 직장으로 학교로 뛰어다니다 집에 와서 다시 밤늦도록 코피를 흘려가며 공부만하는 그가 샘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기저귀 빨래, 젖병소독, 빨간줄 투성이의 가계부로 부터 해방돼 공부만 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두 아이를 재워놓고 집안을 치우다가 한 낡은 노트를 찾아 내고는 엉엉 혼자 울고 말았다.

그 낡은 노트는 여학생 시절부터 유치한 짓을 잘했던 내가 틈틈히 좋아하는 시며, 명언, 금언 따위를 적어두고는 했던 거였다. 「옛날에 한 소녀가 있어 날마다 내일은 오늘과 다르리라 기대하며 살았습니다…」하는 벤더빌트의 시 「동화」 옆에 이 구절이 적혀 있었다.

누가 한 말인지 어느 책을 읽다가 적어둔 것인지 모르는 이 말을 나는 다시 마음에 옮겨 적었다. 그리고는 세살짜리 큰 아이는 걸리고 작은 아이는 등에 업고 꽤 긴 길을 걸어서 원고지를 사러 갔었다. 그때 우리는 변두리 마을 들판 한가운데에서 살고 있었는데, 원고지를 사서 돌아오던 그때 그 길가에 피어있던 작은 들꽃들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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