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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삼성차 진혼곡

입력
1999.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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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절차로 법정관리를 선택한 삼성자동차는 산소호흡기로 연명하고 있다. 이헌재 금감위원장의 말대로라면 길어야 3개월, 산소호흡기를 떼는 순간 삼성차의 운명은 끝이다. 법인으로 이 세상에 존재했던 기간은 4년에 불과하지만, 잉태시점부터 특혜시비에 휘말리는 등 숱한 논란과 영욕을 겪으며 한국경제사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자취를 이미 남겼다. 그런데도 임종의 순간까지 그 뒷처리를 둘러싼 거센 소용돌이가 일고 있다.지난 95년 삼성차의 출발은 얼마나 화려했던가. 불패신화의 삼성이 자동차를 시작했다고 온세계가 주목하고, 미국의 자동차메이커들까지 깜짝 놀라는 판국이었다. 같은 해 미국의 시애틀에서는 제프 베조스라는 서른한살짜리 젊은이가 허름한 창고를 하나 얻어 「아마존.com」이라는 인터넷서점을 창업했다.

뉴욕의 월가에서 헤지펀드 매니저로 일하던 그는 렌터카에 강아지 한마리를 달랑 태우고 시애틀로 와 창고창업을 감행했다. 삼성차와 아마존은 같은 시점, 각각 한국과 미국에서 이렇게 다르게 시작했다. 「화려한 팡파르, 초라한 출발」의 극단적인 대조였다.

그리고 4년 후, 운명은 역전됐다. 신생 벤처기업 아마존은 세계 최대의 서점으로 발돋움했고, 삼성차는 만신창이가 돼 운명(殞命)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공교롭게도 삼성물산은 최근 자사 인터넷 쇼핑몰에 아마존 사이트를 설치, 아마존의 한국지사 역할을 하고 있다. 참으로 인생유전만큼이나 예측할 수 없는 기업유전의 풍경이다.

삼성차는 돈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아마존은 아이디어로 출발했다. 한쪽은 돈이면 아이디어도 사고, 정책도 바꾸고, 여론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한 반면 다른쪽에선 아이디어가 돈을 모으고, 경쟁력을 키우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돈이 사업의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것과 아이디어가 헤게모니를 잡는 것은 간단한 차이가 아니다. 돈이 위세를 부려 아이디어가 메말라죽는 척박한 땅에 우리는 살고 있다. 반면 그들의 자본주의적 아이디어에는 성역조차 없다.

실리콘 밸리의 멘로파크 장로교회는 십일조를 현금 아닌 주식으로도 받는다. 세인트 조셉 가톨릭교회는 기부금의 상당부분을 벤처펀드로 운용하고 있다. 「하느님의 집」도 주식을 보유하며 벤처펀드를 운용하는 마당이다. 이땅에선 언제쯤 사업을 할 때 「아이디어의 헤게모니」가 확립될 것인가.

삼성차만을 그냥 떠나보낼 순 없다. 어차피 삼성차는 20세기 말엽 한국적 기업실패의 상징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시기 기업경영의 갖가지 적폐와 독단, 억지 등을 진혼곡에 실어 함께 떠나 보내야 한다. 기업만이 아니라 정부의 추한 밀실거래 악습도 빼놔서는 결코 안된다.

최근의 움직임은 삼성차의 모든 책임을 오로지 이건희회장에게 밀어버리고 있다. 이회장은 분명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이며 그의 책임문제는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책임질 사람은 이회장 말고도 분명히 또 있다.

삼성차는 설립 당시 잘못된 사업계획과 잘못된 정치와 정부의 밀실정책 등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었다. 그런데도 최근 삼성차의 「정경유착」중에서 온통 「경」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정」을 놓쳐버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당시 삼성차사업을 반대하던 김철수 상공부장관을 갈아치우면서까지 삼성의 앞길을 터준 사람은 김영삼대통령과 한이헌 청와대경제수석이다. 김전대통령의 최근 행적은 누구나 다 아는 터이고, 한씨는 무소속 국회의원으로서 조용히 세비를 받아가며 살고 있다.

삼성차는 수조원의 빚과 휘청거리는 부산경제를 남기고 사라져 간다. 사실 휘청거린 것은 한국경제 전체였다. 이를 치유하고 정상화하는 작업은 보통 일이 아니다. 이번에 법인청산을 계기로 삼성차에 얽혀있는 세기말의 부정적 유산들도 청산해야 한다.

그래야 제2, 제3의 삼성차를 막을 수 있다. 지금 온국민의 관심은 삼성생명 상장으로 삼성일가가 얻게 될 막대한 이득에만 쏠려 있는데, 지난 94년 삼성차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세상에 나왔는지 따져보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홍선근 논설위원

알림: 이번주부터 문창재·김수종·홍선근 논설위원이 임철순편집국차장과 함께 교대로「메아리」를 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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