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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터뷰] SBS 드라마 '은실이' 작가 이금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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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터뷰] SBS 드라마 '은실이' 작가 이금림씨

입력
1999.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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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은실이 팬이다. 재미있게 보고 있다』 (김대중대통령·2월 국민과의 대화에서), 『은실이는 모든 이에게 기쁨과 슬픔 그리고 아쉬움과 그리움을 느끼게 한다』 (ID:ysj ·4월 넷츠고 PC통신에서), 『엉엉~ 다음주가 마지막 이래요. 은실이가 끝나면 삶의 의욕이 사라질겁니다. 작가선생님 제발 끝내지 말아 주세요』 (ID:stonecold·6월30일 넷츠고 PC통신에서)6일 종영하는 SBS 월·화 드라마 「은실이」(연출 성준기). 8개월 동안 수많은 시청자가 이처럼 「은실이」와 함께 울고 웃었다. 즐거운 시청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한 사람이 있다. 작가 이금림(李錦林·51)씨. 그는 2주전 마지막 70회 원고를 쓰다 탈진했다. 영양제주사를 맞았다. 주사기에 묻어나온 피는 선홍빛이 아니라 검붉은 색이었다. 『피를 말린다는 말을 실감했어요. 마지막회 극본이 너무 힘들어 끙끙 앓았지요. 타임머신을 타고 60년대 고단한 시절의 정겨운 사람들과 만나 울고 웃은 긴 여행을 다녀 온 기분입니다』

시대극, 그것도 구질구질할 수 있는 60년대의 힘든 이야기. 아무도 시청률 1위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남성들까지 TV 앞에 끌어 앉히는 힘을 발휘했다. 형식과 장르에 상관없이 진실된 이야기와 휴머니즘이 살아 있으면 시청자들이 봐 준다는 이씨의 신념은 30%대의 높은 시청률로 이어졌다. 대중문화 판도를 좌우하는 10대, 20대를 겨냥한 재미와 감각 위주의 트렌디 드라마가 홍수를 이루는 상황에서 대단한 인기다.

『소박한 꿈 하나로 출발했어요. IMF체제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척박한 상황에서도 따뜻함과 꿈을 잃지 않고 극복해가는 소녀 은실이를 통해 조그마한 위로를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어요.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은실이를 보면서 희망을 얻었다고 말해 참 좋아요』 시청자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그의 드라마는 선정적이거나 감각적인 내용이 거의 없다. 시청자들의 폭넓은 인기를 얻은 그간의 작품들이 말해준다. 치매노인과 가족문제를 잔잔하게 그린 KBS 일일드라마 「옛날의 금잔디」, 고학력 여성의 힘든 일상을 담은 KBS 일일드라마 「당신이 그리워 질 때」가 좋은 사례.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어 도중하차나 안 당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지난해 SBS 미니시리즈 「지평선 너머」가 시청률 지상주의 덫에 걸려 도중하차한 쓰라린 경험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시청률은 작가에게는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해요. 때로는 작가로 하여금 작품성과 진실성을 포기하게 만들고 재미와 선정주의에 빠지게 만드는 마약과 같습니다. 시청률이 광고와 직결되는 방송환경에서 아무리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신경을 쓰게 되지요. 재미와 작품성 두 가지를 추구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운도 따라야 하고요』

이씨의 희망대로 「은실이」는 도중하차하지 않고 당초 계획보다 20회를 연장하는 인기를 누렸다. 이씨는 주연과 조연 등 모든 연기자들의 캐릭터가 살아 움직였고 연출자가 현실감 있는 연출을 했기 때문이라고 공을 돌렸다.

그러나 이씨는 주도면밀하다. 큰 키에 마른 강단있는 인상처럼. 극본에는 다른 작가와 달리 탤런트에게 연기를 지시하는 지문이 적다. 연기자들에게 연기의 폭을 최대한 넓혀주기 위한 배려에서다. 그리고 주연과 조연의 적절한 역할 안배와 감칠 맛 나고 리얼리티를 높이는 대사.

「은실이」는 주연은 말할 것도 없이 조연들과 아역배우들이 모두 뜨는 매우 드문 기록을 세웠다. 한 회에 대사 한마디가 고작인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극장청년 1, 2, 3 「빨간양말」 성동일, 이재포, 정웅인 등은 주연급 조연으로 부상했고 최고의 광고모델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은실이 역의 전혜진을 비롯한 아역들도 시청자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배웠습니다. 조연이 살아야 주연이 산다고 생각해요. 제 극본에 지문이 적은 것은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때로 작가와 연출자간의 불화나 월권으로 드라마가 파행적으로 진행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이씨는 본분을 벗어나지 않는 작가로 방송가에 알려져 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만 충실하면 됩니다. 「은실이」에서 성준기 PD와 작업하면서 즐거웠던 것도 서로의 영역에 대해 신뢰하면서 간섭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최근 한 방송사의 극본공모에 3,000여명이 응모했다. 이중 80%는 여성이었고 대부분 주부들이었다.

『방송작가 하면 떠오르는 것이 고소득, 사회적 인정, 재택근무라는 매력이지요. 하지만 그런 외양만 보고 방송작가를 꿈꾼다면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저의 경우는 새벽 5시부터 밤 9시까지 하루 16시간씩 작업을 하는 중노동이지요. 작가생활 19년 동안 아이들을 돌보지 못했지요. 대학생이 된 아들 둘을 키운 것은 제가 아니라 세월입니다. 늘 아이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하지요. 정말 엄청난 노력과 시간, 그리고 많은 희생을 각오하지 않으면 방송작가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시청자들은 6일 기차를 타고 서울로 상경하는 은실이의 마지막회를 보면서 은실이의 이런 독백을 듣게 될 것이다. 『화산에서의 4년은 내 인생에서 아마 가장 잊을 수 없는 시간들이 될 것임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안녕, 나는 마음 속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화산에게 인사를 한다. 그러나 그것은 화산이 아니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나의 유년시절에 대한 인사였다』

이씨는 방송사나 시청자들에게서 벌써부터 「은실이 2」를 하지 않느냐는 주문을 받고 있다. 『매번 그렇지만 구상하고 있는 작품은 없어요. 너무 힘들어서 당분간 쉬면서 외국에서 음악공부하는 아이들의 연주회 등을 볼 생각입니다』 이씨는 시청자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약력

48년 전북 남원 출생, 전주여고 졸

70년 고려대 국문과 졸업

70~80년 인천 인성여고, 서울 명성여고 국어교사

80년 KBS 단막극 「소리 나팔」로 방송작가 데뷔

「호랑이 선생님」 「고교생 일기」 「물보라」 「빛과 그림자」 「타인」

「일출」 「옛날의 금잔디」 「사랑을 위하여」 「당신이 그리워질때」

「 지평선 너머」 등 극본 집필

95년 백상예술대상 텔레비전 드라마 극본상

95년 제5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특별상

96년 자랑스런 전북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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