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차관급회담이 중대한 위기에 봉착한 것으로 보인다. 1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제2차 남북차관급회담 첫 회의에서 남북한 양측의 현격한 시각차가 재확인된데다, 북측이 황장엽(黃長燁)씨의 인터뷰기사라는 뜻밖의 현안을 들고나옴으로써 회담결렬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우선 이날 회의에서 우리측이 『이산가족문제에 상당한 진전이 없는 한 비료지원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데 대해 북측은 거꾸로 『비료지원을 해야 이산가족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맞받았다. 가능한한 이산가족문제의 논의를 피하면서 실리만을 챙기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이같은 북측의 주장은 지난달 3일 비공개예비접촉 합의내용을 교묘하게 역이용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당시 김보현(金保鉉)총리 특보와 전금철(全今哲)북측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이 작성한 합의서는 「남측은 7월말까지 비료 20만톤을 북측에 제공한다」 「회담의제는 이산가족 문제를 비롯, 상호관심사로 되는 당면문제로 한다」는 등의 내용으로 돼있다. 즉 외견상 두 문구간에는 어떠한 논리적 연결이 없다는 점을 들어 북측은 오히려 남측이 비료지원문제와 이산가족문제를 「부당하게」 연계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러한 북측의 주장을 우리가 받아들일 여지는 거의 없다. 서해사태와 금강산 관광객 억류사태 직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이산가족문제의 실질적 진전이 없는 한 일방적 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고, 국가안보회의 상임위도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이날 통일부 당국자도 『우리 입장은 확고하다』며 『대북 추가지원비료 10만톤의 첫 선적일에 이산가족문제를 협의하겠다는 북측의 입장은 전혀 수용할 수 없다』고 분명히했다.
북측이 회담의제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개 월간지의 기사를 정식으로 문제삼고 나선 것도 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진의를 의심케하는 대목이다. 황씨의 기사가 남측의 계획된 도발이라는 주장에 대해 우리측은 『한국은 언론의 자유가 있어 정부가 언론에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한편 우리측은 이날 이산가족문제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고 진전된 제안을 내놓았다. 사업 규모보다는 빈도(頻度)에 초점을 맞춘 이 제안이 일부라도 실현될 경우 이산가족문제 해결은 물론, 향후 남북관계에도 결정적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베이징=이영섭기자 yo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