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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조연이 떠야 드라마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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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조연이 떠야 드라마가 뜬다

입력
1999.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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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과 주연의 화려한 역전98년 11월 9일 SBS 월·화 드라마 「은실이」의 첫 방송. 「극장 청년」 1, 2, 3은 화면에 잠시 얼굴을 비치고 『형님 오셨어요?』 한마디 던지곤 사라졌다. 대사라고 해야 고작 한두마디인 엑스트라급.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두 달 정도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시청자에 입에 오른 사람들은 주연 이경영과 원미경이 아니었다. 바로 「청년」 1, 2, 3이었던 「빨간 양말」 성동일, 「극장 기도」 정웅인과 이재포였다. 대본 읽기실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 구석에 앉았던 성동일. 그는 방영 한 달만에 주연급만 앉는 탁자로 옮겨앉는 화려한 비상의 주인공이 됐다.

3월 31일 MBC 월·화드라마 「왕초」 시사회장. 중앙에 포진한 주연 차인표와 송윤아. 구석에 자리잡은 조연들. 기자들의 질문 한 번 받지 못한 채 시사회장을 떠났던 조연 「거지」들. 하지만 불과 방영 3주만에 상황은 완전 역전. 시청자의 눈길은 「맨발」 윤태영, 「앵무새」 김세준, 「하마」 박상면, 「까마귀」 이혜영, 「도끼 윤용현」 등에게 집중됐다. 광고계는 주연을 제치고 이들을 기용했다.

조연 캐스팅이 더 중요하다

시청률 1, 2위를 다투는 두 드라마만의 얘기가 아니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SBS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의 박영규, KBS 일일 드라마 「사람의 집」의 권기선, MBC 시트콤 「점프」의 홍석천 등의 인기도 마찬가지다. SBS의 「미스터 Q」, KBS의 「파랑새는 있다」 등에서도 어리숙하거나 약점 투성인 역할을 맡은 조연들이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조연이 뜨는 드라마 시대다. 여의도 방송가에는 「조연이 떠야 드라마가 성공한다」는 말이 정설이 되어가고 있을 정도. 조연의 주연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KBS 드라마국 윤흥식 주간의 설명. 『최근 캐스팅에서 가장 고심하는 부분은 주연이 아니라 조연 잡기다』

동질감, 개성, 연기력_조연이 뜨는 이유

전문가들은 사회·경제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시청자들의 심리와 인식도 바뀌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권위주의 시대, 경제적으로 궁핍한 시대에서는 권력과 부와 지식 등 모든 조건을 갖춘 완벽한 주연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낀다. 반면 민주화하고 여유로운 사회에 접어들면 시청자들은 실수도 하고 인간적 약점도 지닌 비슷한 사람들과의 동질감을 통해 기쁨을 맛본다. SBS 시트콤 「행진」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는 판유걸에 수십만명의 10대들이 환호하는 것은 판유걸이 그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그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라진 삶의 가치관도 조연 전성시대가 열린 한 이유로 설명된다. 좋은 학벌에 사회가 인정해주는 직업을 갖지 않아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마이 웨이를 가려 한다. 문화평론가 마정미씨는 『하나의 이념이나 가치, 영웅적 인물이 사회의 버팀목 역할을 할 수 없는 시대다. 중요한 것은 개성이다. 따라서 드라마에서 보편적 가치의 구현인 주연보다 개성이 쉽게 드러나는 조연이 요즘 시청자의 취향과 기호에 맞다』고 분석한다.

조연급의 연기력도 물론 일조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시청자들의 기호는 그 드라마, 그 얼굴, 그 이미지에 식상해 한다. 또 작위적인 연기보다는 자연스런 연기를 선호한다. 연기력 보다는 광고에서 눈에 띄어 주연으로 하루아침에 발탁되는 젊은 연기자들이 많은 것에 비해 조연으로 성공한 연기자들은 상당수가 연극 무대나 학교에서 탄탄한 연기력 기반을 다진 사람들이다.

드라마 PD들은 앞으로 개성이 쉽게 드러나고 자연스런 연기력을 바탕으로 한 조연들이 드라마의 중심축이 되는 「다수 조연의 주연화」 경향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왕초」의 장용호 PD는 『2명 정도의 주연과 7~8명의 조연을 골격으로 삼았던 드라마의 일반 패턴이 다수의 조연들이 극을 이끌어가는 양상으로 변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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