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초상」은 몇개의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불안 소외 좌절 상처같은 것들. 뜨거운 태양, 아니면 사방의 벽이 빛을 차단한 어두운 공간일 터이다. 때문에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젊음은 반항과 방황이며, 그 「젊음의 특권」이 끝날쯤 그들은 진실의 힘으로 팍팍한 세상의 틈에서 「희망」을 건져 올린다.프랑스 유학파 김시언(37)이 2년전 16㎜장편 독립영화 「하·우·등」(夏·雨·燈)으로 젊음을 기록했다. 국내에선 처음 상업용으로 극장에 개봉하는 16㎜장편 영화다. 제작비라고 해야 겨우 1억원. 작고 소박한, 그러나 정성스런 필체로 써내려간 비망록. 그곳에는 낭만과 사치란 없다. 마치 작은 도화지에 수채화를 그리듯 담아낸 여름날의 여섯 남녀의 이미지. 그것은 푸르트 첸의 「메이드 인 홍콩」처럼 「메이드 인 코리아」가 됐다.
강도질을 하고 폐교가 된 분교로 숨어든 세 청년(병림 창도 한수)에게 젊음은 장마 끝에 찾아온 무더운 여름날의 태양이다. 그 태양이 그들을 지치고 나른하게 만들고, 그들을 외딴 곳에 숨어들게 했다. 고아원 동료인 이들은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세상을 거꾸로 보고, 지붕에 올라가 해를 서산으로 밀어내려 한다. 음악도 없이 상의를 모두 벗은 채 담배를 물고 생명이 없는 허수아비처럼 춤추는 그들.
이에 앞서 장마철에 만난 이 학교 여자동창생 세명(주경 다정 송연). 그들에게 이 학교는 추억과 꿈의 공간이다. 그러나 그 꿈은 지금의 현실에서 배반당하고 상처와 아쉬움과 시들함만 남았다. 미래의 희망보다는 과거의 추억으로 숨어들고 싶은 세 여자. 이혼당한 다정의 술주정과 송연의 빗속에서 우산들고 춤추기는 다름 아닌 자신과 친구와 세상과의 단절에서 오는 공허한 몸짓들이다.
영화는 세명의 남자에게는 노란색, 여자에게는 푸른색을 입혀 교차 편집으로 같은 공간의 두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그리고는 마지막 병림과 주경의 만남, 창도가 만든 「등」으로 따뜻하고 밝은 시간을 시작한다. 세 청년의 유머스럽고 생동감 넘치는 대화와 장난에까지 쓸쓸함과 무료함은 묻어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정성스러움. 작은 필름의 한계를 세심한 연출과 구도로 극복하면서 다양한 시각적 아름다움과 이미지를 살려냈다는 것. 적은 돈, 작은 이야기라고 결코 그 가치까지 보잘 것 없는 것은 아니다. 로테르담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진출했었다. 3일 개봉. ★★★☆ (평가:한국일보문화부 ★5개만점,☆은1/2)
/이대현기자 leed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