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나 영화는 제목 짓기가 마케팅의 절반. 미리 작품을 점찍고 가는 경우가 아니라 비디오점에서 즉흥적으로 작품을 고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 등 멋진 영화 제목은 미국에서 영화를 수입한 일본이 만든 제목을 우리나라가 「우회 수입」해 사용한 경우. 요즘엔 외화 개봉 시점이 전세계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없다.
일단 눈길을 끌고 보자는 상업주의 때문에 썩 괜찮은 작품이 에로물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블로우 업」(Blow Up)은 「욕망」이란 제목의 비디오로 출시됐는데, 에로물과는 거리가 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보디 우먼」(Identification Of A Woman)도 같은 경우. 두 작품 모두 현대사회 인간의 실존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리틀 빅 히어로」(Hero), 「아름다운 비행」(Fly Away Home)은 한글 제목이 원제보다 더 어필한 경우. 그러나 제목이 겹칠 위험도 많다. 93년 개봉한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의 원제는 「Boxing Helena」. 여자를 소유하기 위해 사지를 잘라내는 엽기적 내용의 영화이다. 이 때문에 알코올 중독에 걸린 아내(멕 라이언)를 극진히 돌보는 남편(앤디 가르시아)의 얘기를 그린 「When A Man Loves A Woman」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남자가 사랑할 때」라는 제목을 달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점을 고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외국어 제목을 그대로 쓰기를 권하고 있다. 그래서 얼마 전 영화로 개봉된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방아쇠, 공이, 총열로 셋이 모이면 한자루의 총)처럼 제목도 길고, 뜻도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업 클로스 앤 퍼스널」(밀착취재), 「유주얼 서스펙트」(1차 용의자 집단) 등은 외국어 사용으로 호기심이 배가된 사례.
국내 B급 에로 비디오는 유행어 경향을 잘 반영한다. 「노랑 머리」가 논란이 되자 「노란 머리」가 나왔다. 「젖소부인 바람났네」 이후 「꽈배기 부인」 「만두부인」 등의 시리즈가 나오더니 최근엔 「왕따 부인」까지 등장. 「O양」 비디오 사건을 의식한 「K양의 개인비디오」 「몰카 자율학원」 「O양의 현장 르포」도 나왔다. 영화를 패러디한 제목도 많다. 「식스 데이 세븐 나잇」을 모방한 「세븐 데이 섹스 나잇」, 「엑스 파일」을 흉내낸 「섹스 파일」, 「나인하프 위크」를 본 뜬 「퍼스트 나인 하프 위크」 등은 뻔한 내용을 「제목」으로 커버하려는 상술이니 속지 않도록.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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