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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미씨] "우는 아들과 헤어질때 가장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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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미씨] "우는 아들과 헤어질때 가장 힘들어"

입력
1999.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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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미(閔泳美·35)씨는 금강산관광을 위해 집을 떠난지 11일만인 29일 「북한 억류」의 악몽을 안고 성남시 중원구 은행2동 집으로 귀가,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북측이 지시하는 대로 사죄문을 썼을 뿐, 나는 억류될 만한 실수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_억류생활동안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순간은.

『억류된 첫날 조사를 받느라 밤을 샜을 때와 컨테이너 건물안에 갇혀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소리나 관광객들의 말소리를 들을 때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종훈이를 먼발치에서 보고도 만나지 못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_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달라.

_『억류 다음날 오전 10시께 화장실에 가느라 컨테이너 건물에서 나왔는데 50여㎙ 밖에서 종훈이가 6조 조장과 함께 서 있었다. 종훈이는 「엄마」라고 부르며 울면서 내게 오려고 했지만 나도, 아들도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_조사과정에서 힘들었던 점은.

『내 말은 1%도 믿지 않고 무조건 진실을 말하라고 강요할 때였다. 특히 금강산에서 서로 말을 했던 환경보호순찰원이 대질과정에서 「통일이 되면」이라는 말을 빼고 「남한에 오라는 말만 했다」고 할때 너무 억울했다』

_조사과정에서 협박이나 폭력은 있었나.

『언성을 높이고 가끔 욕설도 했지만 조사과정이 폭력적이진 않았다』

_자술서는 작성했나.

『북측의 「법관」이라는 사람이 제시하는 문서에 사인을 했을 뿐이다. 나는 사죄문만 6번 썼을 뿐이다』

_언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았나.

『25일 오후 6시께 현대직원을 만났을 때다. 그날 아침부터 「돌아갈 수 있겠구나」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현대직원을 보고서야 확신이 섰다. 하지만 풀려날 것같은 느낌은 25일 아침부터 받았다. 그래서 북측 요원에게 「내일 입을 옷 세탁을 해야겠다」고 한번 떠보았더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기에 더욱 확신을 가졌다』

_다시 금강산에 가고 싶나.

『북한사람들은 치가 떨리지만 금강산엔 꼭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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