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법학자 페터 아이겐(Peter Eigen)은 반부패 운동의 선구자다. 프랑크푸르트대학과 미국 조지타운대학에서 법학을 가르치던 그는 세계은행으로 자리를 옮겨 아프리카와 중남미 국가 경제개발 프로그램 관리자로 25년간 일하면서 부패가 국가발전에 얼마나 무서운 해독인지 절감했다. 세계은행 동아프리카 책임자 시절인 91년 케냐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가 부패라고 단정한 그는 사표를 던지고 베를린에 돌아가 국제투명성위원회를 설립했다.■95년부터 갤럽 등 7개기관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각국 부패지수를 매겨 발표하자 국가간에 순위경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 나라가 얼마나 깨끗한지를 말해주는 투명성 지수에 그동안 신뢰가 쌓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96년 100점 만점에 50점 수준인 5.02였으나 97년 4.29, 98년 4.20으로 떨어졌다. 순위도 27위, 34위, 43위(짐바브웨와 공동)로 밀려났다. 순위추락은 조사대상국 증가 때문이라지만 과락에 가까운 점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국제투명성위원회 연차회의에 서울시장이 「교사」자격으로 참가하여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서울시가 지난 5월 직원을 파견해 부조리 방지책으로 실시중인 민원온라인 공개시스템, 시민감시관 제도 등을 설명하자 며칠 전 아이겐 위원장에게서 공한이 왔다. 올 가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리는 제9차 회의에 참석해 반부패운동의 모델 케이스로 소개해 달라는 초청장이었다. 민원공개 시스템을 혁신적인 부패방지책으로 평가한 것이다.
■이 시스템은 주택 건축 위생등 10개분야 27개 업무 담당부서가 민원처리 과정, 허가여부, 처리기간 등을 인터넷으로 공개함으로써 투명행정을 지향하고 있다. 4월부터 시행중인 이 제도가 손을 안써도 민원이 처리된다는 믿음을 주고 있지만 아직 만족할 수준은 아니다. 약속기간이 지나도 처리되지 않는다는 민원인들의 원성이 그치지 않고 있다. 90여개국 반부패운동 지도자회의에서 고건 시장이 떳떳한 교사가 되려면 민원의 만족도를 더 높여야 한다.
/문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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