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는 낙태라는 주제상의 무거움에 다가서는 참신한 접근법이 돋보인다. 무대 세트도, 배우도, 심지어는 객석까지도 온통 흰색으로 도배돼 있다. 극은 인간의 오만으로 그 세계가 어떻게 교란돼 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자궁속의 정자와 난자.극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관객은 새로운 세계로 진입한다. 입구에서 나눠주는 비닐 봉투에다 신발을 벗어 넣어 두고, 극을 관람하게 돼 있다. 탈화(脫靴)는 딴 연극에는 없던 독특한 통과의례다. 「인간적 체취란 꼭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잖소? 성(性)이 그렇듯」.
두 마리의 난자(장미, 잔디)가 굴러 들어 와 미지의 바깥세상을 이야기하며 수다를 떤다. 한 마리의 정자(살찐 물고기 거꾸로)가 들어 온 것은 그 때. 그들은 결합하지만, 찢어져야 한다. 『강한 힘이 잡아 당겨』 낙태 수술때문에 빨려 나가는 것이다. 극의 후반부는 낙태 문제. 어두운 조명속에 고통스런 마임 등이 절반을 차지한다.
이 연극은 낙태문제와 함께 성(性)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지금 얼마나 자연스런 일상이 됐는지, 은연중 말한다. 두 마리의 난자가 정자를 기다리는 무료함을 달래는 장면에서 콘돔을 풍선처럼 불다 날려 보내는 것은 그 대표적 예. 낙태반대운동협의회와 사랑의 금줄(禁繩)달기운동본부의 후원으로 이뤄지는 이 극의 관객에게 극단측은 새끼로 꼰 금줄을 나눠주기도 한다. 성과 낙태문제를 시극·이미지극 등으로 표현, 극작 연출가 박정재(38)씨가 지난해부터 시도해 오고 있는 살찐물고기 시리즈의 제 3편.
「거꾸로」란 자궁안에 있다 낙태된 태아를 뜻한다. 25일까지 강강술래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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