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린 시절부터 특히 안중근의사께 관심이 컷던 이유는 좀 별난 사정 때문이었다. 내 조부도 33세, 부친도 33세에 타계하셨기 때문에 「어쩌면 나도 그 나이가 되면 세상을 떠나게 되지 않을까」하는 예측을 하며, 30대 초에 죽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하여 어린 시절부터 깊이 생각해보곤 하였다.그러다가 예수님께서 33세, 안중근의사께서 31세에 타계하신 것을 알았을 때 그리고 그 분들의 죽음이 범상치 않은 죽음인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나는 30대남자의 죽음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 깨달음은 두려움이라는 모습으로 내 어린 가슴에 스며들었다. 특히 안중근의사의 경우가 그랬다. 인간은 과연 신념 때문에 자신을 죽음 속으로 던질 수 있는 것인가? 도대체 어떠한 신념이 죽음의 공포를 초월하게 하는 것일까?
지난 3월26일은 안중근의사 89주년 기일이었다. 안의사께서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중국 뤼순(旅順)형무소에서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교수형 당한 지 89년, 오는 10월26일이 하얼빈(哈爾濱)역에서 의거하신지 만90년 되는 날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국내의 몇몇 뜻맞는 분들 그리고 특히 중국의 다롄(大連)·뤼순 지역에 살고 있는 동포들과 함께 「안중근 의사 여순(旅順)기념사업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20세기의 마지막 해를 보내며 안의사께서 처형당하신 바로 그 고장에서 추모행사를 하기로 하고 준비해 왔었다.
그리하여 3월26일 오후3시, 다롄 소재 다셴(大顯)호텔 홀에서 「안중근 의사 순국89주년 추모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참석자 60여명으로 규모가 크지 않은 행사였지만 대부분이 다롄지역에 살고 있는 2만 동포를 대표할만한 원로들과 지도급인사여서 어쩌면 장엄한 느낌조차 드는 뜻깊은 추모행사가 되었다.
세미나 주제는 「안중근의사의 동양평화론」이었다. 추모행사의 보람은 무엇보다도 다롄·뤼순 지역에서 안중근의사를 추모하는 행사가 처음 있는 일로써 참석자들에게는 민족의 정체성을 되새기는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는 점이다.
본받을 선조를 깃발처럼 높이 들어 세우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건 정체성을 형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되어 있다. 아기가 흉내내어 말을 배우듯 인간은 모방하면서 자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21세기 그리고 다음 천년을 살며 국가를 발전시켜가야 할 우리 후손들에게 『저 분을 닮으라』고 가리킬 한국남자의 모범으로 누구를 내세울 것인가? 안중근의사라고 나는 생각한다.
21세기 한국인의 삶을 걱정하며 전망할 때 무엇보다도 사고방식의 혁명이 긴요해 보인다. 그 사고방식에서 그 행동이 나오고 그 행동이 그 삶의 형태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한국남자는 모두 안중근의사가 되고 한국여자는 모두 유관순열사가 돼야 한다. 하느님과 손잡고 세상을 이긴 두 분을 닮은 자아를 형성해야 한다. 우리여, 우리여, 자기 운명의 주인,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 되시기를!
/김승옥·소설가·세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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