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왜 사느냐는 질문은 좀 짜증스럽다. 하지만 왜 죽느냐는 질문은 흥미롭다.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언제 어떤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하느냐는 문제는 멀리는 토마스 아퀴나스 이래로 신학자들의 몫이었고 가깝게는 뒤르켕을 비롯한 사회학자들의 단골 주제였다. 그들은 자살을 신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또는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려 애썼다.
하지만 기실 우리같은 갑남을녀들은 그런 심오한 원인이나 차가운 통계보다는 구체적 사실에 더 흥미를 느낀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혁명시인 마야코프스키가 러시안 룰렛을 하다가 죽었다든가, 어떤 남자가 자기 머리에 못을 일곱 개나 박아 자살을 했다든가, 가이아나의 인민사원에서 천 명 가까운 인간들이 집단으로 자살했다든가 하는 이야기들 말이다.
사람들이 자살하는 동기나 방법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이 책에서 거론되는 자살의 사례들은 너무나 다양해서 어쩌면 자살하는 방법은 살아가는 방법의 수효와도 맞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사람 차별도 한다. 어떤 사람의 자살은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모방자살이 줄을 잇지만 어떤 이의 자살은 가족 단위의 추문으로 끝나버린다. 그런 면에서 죽음 역시, 인간사 모든 양상과 마찬가지로 불평등하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런 불평등에 대해 분개하지도 않고 그 사회적 의미에 대해 구구절절히 개입하여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읽는 자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 저자의 그런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글귀가 책 서두에 인용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서는 것보다 앉는 것이, 앉는 것보다 눕는 것이 좋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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