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성은 멈췄지만 코소보 알바니아계 주민들의 가슴에는 은발의 사회학자 페힘 아가니(66)가 「영원한 지도자」로 살아 있다. 이브라힘 루고바가 이끄는 코소보민주동맹의 부총재로 올해 3월 랑부예 평화협상에 참가해 막판까지 코소보의 비극을 막기 위해 노력하던 아가니. 그의 막내아들 멘토 아가니(37)는 28일 그가 알바니아계 청년들을 사지에서 구하기 위해 스스로 변장을 벗고 죽음을 선택한 마지막 순간을 AP통신에 털어 놓았다.랑부예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고 나토 공습이 확실해 진 3월 그는 가족들의 걱정에는 아랑곳 없이 고향인 프리슈티나로 돌아왔다. 그는 마치 협상 실패가 자신의 탓인양 아무말도 없었다. 24일 나토의 공습이 시작되자 그는 멘토에게 농담처럼 『미군 조종사들이 비자도 없이 유고 영공으로 들어오는구나』 고 힘없이 한마디를 던졌다.
나토의 공습이 강화되자 세르비아는 주민 소개에 열을 올리는 한편 아가니에 대한 포위망도 좁혀 왔다. 당시 아가니의 행방이 묘연하자 나토와 뉴욕 인권감시센터는 그가 희생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아가니는 그 때 세르비아의 감시를 피해 친척집을 전전하고 있었다.
아가니가 탈출을 결심한 것은 루고바가 유고당국의 허락하에 이탈리아로 떠난 5월 5일께. 그는 『동족을 위해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며 짐을 꾸렸고 6일 새벽 가족과 함께 변장을 한 채 마케도니아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국경이 폐쇄되는 바람에 기차는 프리슈티나로 방향을 바꾸었고 어느 순간 벌판에 멈춰 섰다. 기차에 오른 세르비아 경찰은 승객들을 하차시킨 다음 20여명의 청년들을 불러내 『너희 운명은 10분밖에 남지 않았다』며 학살을 예고했다.
그 순간 아가니가 변장을 위해 걸쳤던 숄을 벗고 군중들 앞으로 나섰다. 세르비아 경찰이 그의 인상착의를 놓칠 리 없었다. 그들은 청년들을 대열로 돌려보내고 대신 아가니를 『나토군을 불러들인 장본인』이라며 차량에 태워 사라졌다. 멘토는 『아버지는 언제나 그랬듯이 그 순간에도 페힘 아가니 개인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아가니는 다음날 리플얀의 한 계곡에서 시체로 발견됐고 3일뒤 프리슈티나에서 장례가 치러졌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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