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의 총파업 투쟁이 크게 후퇴하면서 새로운 노정합의가 발표되었다. 노동부장관과 한국노총 위원장, 국민회의 노동특위 위원장이 25일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합의는 공공부문 구조조정 때 예산편성 지침 보다 사업장별 단체협약을 우선 이행한다는 것 등이다.노사정위원회에서 구조조정의 원칙과 방향에 대해 사전 협의하며, 노사관계 제도개선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검찰 간부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발언으로 강경일로를 치닫던 노동계의 「하투(夏鬪)」움직임이 노정 간의 대화 분위기로 바뀐 것은 우선 반가운 일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파업유도 발언으로 빚어진 국민적 불신을 벗어나는데 급급했고,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총파업 투쟁을 선언했지만 노동자들의 호응이 예상 외로 낮았다. 각각 약점이 노출된 가운데 이번 노정합의가 탄생한 셈이다. 정부는 이 합의를 바탕으로 이른 시일 안에 제3기 노사정위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그러나 국가의 노사정 관계가 항구적 틀로서 지녀야 할 신중성을 잃고 한 때의 정치적 변수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합의로 인해 인력감축(30%)과 체력단련비 폐지, 퇴직금 누진제 적용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공공부문 예산지침이 사실상 효력을 잃어 정부의 공기업 구조조정이 크게 수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기업의 추가 인원정리가 어렵게 됨에 따라 민간기업의 구조조정도 큰 차질을 빚게 됐다. 개혁의 후퇴가 아니냐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사용자측도 정부가 노동계를 달래기 위해 원칙을 저버리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번 합의는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개선방안과 법정근로시간 단축 등을 논의해 연말까지 법률을 제·개정하기로 했지만, 재계는 이에 대한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전임자 임금문제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반하며, 근로시간 단축 역시 기업의 경쟁력과 수익성을 크게 악화시키므로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직도 사회적 합의기구인 노사정위가 IMF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감당해야 할 일과 나눠야 할 고통은 많다. 지금 노사정위가 기능정지 상태에 빠진 것은 노동계 뿐 아니라 재계도 노사정위를 탈퇴했기 때문이다.
노사정 관계가 지나치게 정치논리에 끌려 변칙으로 흘러서는 안된다. 제3기 노사정위가 출범하기 전에 노사정 3개의 목소리가 고르게 존중되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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