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국민사과문 나오기까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25일 기자간담회 서두에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들께 걱정을 끼친 점에 대해 크게 반성하고 대단히 죄송하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사과하는 김대통령의 모습에서는 『오도된 여론 보다는 원칙을 택하겠다』는 그간의 완강함은 찾을 길이 없었다. 24일 국민회의 원외위원장과의 다과에서 『국민은 하늘』이라고 말했을 때 예고되기는 했지만, 「반성」「시정」이라는 표현은 청와대 참모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이들은 『마음 아프면서도, 홀가분하고, 기대가 된다』는 복잡한 심사를 내비쳤다.
이날 절절한 사과가 나오기까지 김대통령은 적지않은 고민을 했다. 옷 사건 등에서 나타난 비판여론이 과도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림 로비 의혹처럼 풍설만으로 난타당해야 하는 현실에 수긍하기 힘들어 했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사실 러시아·몽골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6월 초만해도, 김대통령은 언론의 비판에 대해 「마녀사냥」이라는 격한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수석들에게 『왜 국민과 언론이 사소한 문제에 매달리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그 이후 20여일 동안 김대통령이 이른바 원칙론을 고수하면 할수록 민심은 더욱 더 멀어져갔다. 당연히 김대통령의 흉중에는 「경제위기도 극복하고, 4강외교도 복원하는 등 큰 일을 해냈는데 왜 국민은 마음을 주지않느냐」는 괴리감이 가득했을 법 하다. 그 괴리감의 답을 구하기 위해 김대통령은 오랜 조언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조언자들 중에는 『기득권 세력의 반발에 민초들이 이용당하고 있다』『힘을 보여주지 않으면 권력은 도전받는다』는 반격론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치자(治者)의 과오는 실정 보다는 오만에 있다』는 자중론이 대세였다. 경제위기 극복이 분명한 업적이지만, 이를 김대통령 자신이 줄기차게 극찬하는 상황에서 국민은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얼마전 김대통령이 참석한 조찬기도회에 DJ 지지그룹이었던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들이 오기를 꺼려했다는 사실은 여권 전체에 충격이었다. 청와대 내에서도 민심의 심각성에 대한 보고가 올라갔다. 이런 조언과 현상을 보면서 김대통령은 『민심과 전선(前線)을 형성해서는 안되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사과만으로 순탄한 국정운영이 보장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또한 중우(衆愚)정치에서 볼 수 있듯 마냥 민심을 따르는 게 옳은 방향일 수도 없다. 민심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이끌 수 있는 해답은 지금부터 김대통령이 찾아야 할 몫이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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