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씨 석방의 주역들 -민영미씨가 억류 6일만에 가족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현대그룹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과 김윤규(金潤圭) 현대아산사장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정명예회장은 민씨가 20일 북측에 억류되자 곧바로 경협파트너인 북한 조선아태평화위원회 김용순 위원장에게 전문을 보내 석방을 촉구하는 한편 김윤규사장을 23일 중국 베이징(北京)에 급파, 북측과 담판을 짓도록 했다.
그는 김사장을 베이징에 보내면서 『민씨 억류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돌아올 생각을 아예 말라』는 특명을 내렸다. 정명예회장은 특히 김사장을 통해 김용순위원장에게 메시지를 보내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등 북측 최고위관계자들의 결단을 유도했다는 게 현대측 설명이다.
그는 『민족적 사업인 금강산관광사업이 민씨 억류사태로 중단돼서는 안된다』며 김정일위원장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현대측의 민씨 석방요구에 대해 『상부의 지시가 없다』며 거부했던 북한 조선아태평화위측은 김정일위원장이 정명예회장의 메시지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석방합의안에 도장을 찍었다는 후문이다.
김정일위원장은 지난 해 10월 30일 정명예회장과의 회동 후 그를 존경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 등 우호적인 입장을 취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왕회장」의 오른팔인 김사장은 이번 협상타결을 유도한 일등공신. 그는 23일 베이징으로 떠난 후 국내언론과 베이징특파원들의 집요한 추적을 교묘히 따돌리며 북측 조선아태평화위원회 관계자와 비밀협상을 진행했다.
그는 베이징에서 김용순위원장, 강종원 서기장등과 수시간동안 「전화담판」을 벌여 합의점을 도출하는 뚝심을 발휘했다. 협상기간 중 보안유지를 위해 청와대 및 통일부, 정명예회장등 핵심관계자에게만 직접 협상경과를 보고하고 휴대폰을 꺼놓은 채 현대아산과도 연락을 끊었다.
협상이 급진전된 24일부터는 북측과의 회동장소를 베이징에서 일본 도쿄로 옮기는 등 007작전을 능가하는 극비협상을 계속 했다.
그의 북한과의 인연은 89년 정명예회장과 북한을 다녀오면서 부터 시작됐다. 4월 현대의 대북경협단장에 임명되자마자 한달에 한번 이상 북한과 중국을 드나들며 △금강산관광선 출항 △서해안공단조성 △정명예회장과 김정일국방위원장과의 면담등을 성사시킨 협상의 명수이기도 하다.
수년 전 대한항공 여객기가 트리폴리공항에 착륙하다가 기상악화로 사고가 나 70명이 사망하는 사고현장에 있었으나 기체 폭발직전에 탈출, 「불사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대북경협실무팀장인 김고중(金高中) 현대아산 부사장은 현대종합상사의 베이징 지사장을 맡고 있다가 대북경협이 본격화하면서 현대아산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실무협상을 주도했다.
/이의춘기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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