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는 적어도 정치적 측면에서 우리민족에게는 참담한 기간이었다. 평소 한수 아래로 봐오던 일본에게 온갖 수모를 겪은 끝에 국권을 빼앗겼다. 이민족 지배를 받은 35년간 민족역량을 결집해 통합된 저항운동을 벌여 나라를 찾지도 못했다.다른 사람들의 덕택으로 해방을 맞이하고도 통일된 민족국가를 건설하지 못했다. 국토가 분단된 이후에도 과오를 반성하고 바로잡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단군 이래 최악의 참화를 겪었다. 이러한 실패는 세기말까지 이어져 아직도 한반도에서는 자유로운 왕래는 커녕 이산가족 상봉과 우편물의 교환도 이뤄지지 못한다.
특히 한국전쟁은 문제가 심각하다. 3·1운동, 8·15해방 등은 국내적으로는 중요한 사건이었지만 세계 정치사에서 보면 변방의 작은 일이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초강대국들을 포함해 세계 모든 강대국들이 참여한 세계전쟁이었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세계는 양대진영으로 나뉘게 됐고 독일과 일본이 부흥했으며 「제한전쟁」이라는 새로운 전쟁양식이 개념화하기도 했다. 당사자인 우리들로서는 여파가 너무 커서 아직도 수습은 커녕, 경험에 대한 소화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한국전쟁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규정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이 「실패의 경험」에 관한 의견상 격차를 줄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반도 밖에서는 이제 20세기 중반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이해가 기본적인 윤곽을 드러내고 있지만 막상 당사자들은 아직도 미정리 상태다.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든지, 아직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라든지 등의 이유를 들어 이를 합리화하려 한다면 20세기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후세에 면목이 없는 일이다. 참담한 실패를 저지르고 나서 적어도 이를 제대로 파악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기록이라도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전쟁연구회가 북한에 한국전쟁에 대한 공동연구를 제안했다고 들었다. 사학자 버터필드의 말대로 불행한 과거는 파묻으려 하지 말고 저녁식사에 초대해야 한다. 다소 늦은감이 있지만 이런 노력들이 열매를 맺었으면 한다.
/라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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