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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적을 위한 엘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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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적을 위한 엘레지

입력
1999.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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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사태 와중에 북방 한계선(NLL)등 생소한 개념과 함께 야릇한 용어들이 등장해 관심을 높였다. 해군의 충돌작전을 「배치기」·「올라타기」 등으로 표현하더니, 급기야 국방부 대변인이 남북 교전을 부부 싸움에 비유했다가 쫓겨났다. 미묘한 상황을 쉽게 풀이하려는 충정이 북풍 알레르기에 묻혔다는 지적도 있지만, 피흘리는 전투를 구경거리처럼 묘사하는 것은 군이든 언론이든 잊어서는 안될 금기다.■높은 사람들이 더 들뜬 상황에서 『북한군이 썩은 무말랭이를 먹는 것이 측은했다』는 해군 사병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북한 수병들은 우리 고속정이 들이받자 당황한 나머지 신발짝등 허섭스레기와 먹던 무말랭이까지 내던졌는데, 이게 역겨울 정도로 썩었더라는 얘기였다. 그들 형편에 썩은 무말랭이까지 먹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고, 오히려 생사를 다툰 신세대 병사가 배와 함께 수장됐을 지 모를 또래 북한 수병을 동정하는 마음이 가상했다.

■미국 보스턴 근교 콘코드의 독립전쟁 기념비 옆에는 총포를 마주 겨눴던 영국 병사들을 위한 작은 추모비가 있고, 「대서양 건너 아니 들리는 영국 어머니들의 통곡소리…」라는 엘레지(輓歌)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이를 눈여겨 본 수필가 피천득 선생은 적을 위해 엘레지를 짓는 아량과 인정미가 감격스럽다고 했다. 그리고 두 나라 젊은이들은 같은 언어로 이런 엘레지를 배우기에, 세계 대전에서 같은 편이 됐을 것이란 어느 학자의 소견도 전하고 있다.

■며칠전 신문 광고면에는 해군 고속정에서 근무한 신세대 예비역 장교가 쓴 가상 전쟁소설 한편이 소개됐다. 우리 해군과 북한 특수 8군단이 일본의 독도 핵실험을 막기 위해 연합 특공대를 조직, 일본 자위대와 싸운다는 줄거리다. 일본이 부지런히 플루토늄을 비축하고 있는 현실과 역사의 변전을 생각하면 마냥 황당무계한 것은 아니다. 물론 적과 맞설 위험이 없는 후방에 앉아 호기롭게 대북 강경론을 외치는 이들은 한가한 객담으로 여길 것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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