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층리포트「화장(火葬)률 증가는 잰걸음, 시설 확충은 게걸음」장묘문화개혁운동이 확산되면서 서울시민의 화장률이 급증하고 있으나 화장시설은 턱없이 부족해 모처럼 불붙은 화장 열기가 사그라들지 않을까 우려된다. 특히 서울시는 내달부터 대대적인 화장장려 캠페인을 벌이기로 해 대책도 없이 손쉬운 홍보에만 열을 올린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급증하는 화장=악상(惡喪)을 당했거나 돈 없는 사람들의 부득이한 선택으로 치부되던 화장이 급증세를 탄 것은 지난해 9월이후. 수해로 경기도 일대 공원묘지들이 크게 훼손된데다, 뒤이은 최종현(崔鍾賢)전SK회장의 화장 실천을 계기로 화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 계기가 됐다. 그 결과 30%를 간신히 넘던 서울시 화장률이 지난해 36.4%로 껑충 뛰었고, 올해에는 40% 가까이 늘 전망이다. 이같은 추세로라면 2002년이후에는 화장률이 매장률을 앞지를 것으로 예상된다.
■화장장 실태=그러나 시립 화장장은 벽제 1곳뿐이다. 하루 평균 화장건수는 58구로, 적정처리건수(45구)를 넘어 처리한계치(60구)에 육박해있는 상태다.
23일 오전11시 벽제 화장장. 피크타임(8시30분∼10시30분)이 지난 시간인데도 15기의 화장로가 풀 가동중이고, 화장장 안팎은 지친 유족들로 북적댔다. 입구에는 운구차 5대가 시신을 실은 채 안치실 차례를 기다리며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고 있었다. 21일부터 개장을 오전5시30분으로 2시간 앞당겼지만유족들의 불편은 여전하기만 했다.
화장장 관계자는 『새벽에 발인하는 장례관습탓에 유족들이 한꺼번에 몰려 보통 2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며 『심할 때는 4∼5시간씩 지체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장인상을 치르기 위해 오전9시30분 도착했다는 임모씨는 『2년전 장모상때는 곧바로 화장했는데 이번에는 2시간이나 기다렸다』며 『슬픔에 잠긴 유족들을 마지막까지 지치게 해서야 되겠느냐』고 불만을 표시했다.
■늑장 대책=서울시의 화장장 정책은 어려운 일은 되도록 뒤로 미루고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마지못해 움직이는 공직사회 「복지부동」의 전형을 보여준다. 94년 이원종(李元鐘)당시 시장이 화장장 증설 추진을 지시했으나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물러나자 흐지부지돼고 만 것이 대표적 예다.
그나마 지난해 7월 고건(高建)시장 취임후 본격 착수한 제2화장장 신축 계획은 SK측이 비용을 전액부담키로 약속했음에도 1년이 다 되도록 부지 선정조차 하지 못한 채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 단기대책으로 내놓은 벽제화장장 화장로 7기 증설 계획도 지지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내년 7월 완공예정이었으나기종 선정과 설계 발주가 늦어져 4개월여뒤로 미뤄지게 됐다.
■장기적 비전이 없다=더욱 심각한 문제는 5년뒤, 10년뒤를 내다보고 대처하는 장기적 안목이 없다는 것. 이대로 간다면 수년이내에 「화장 대란(大亂)」이 일어날 것이 불보듯 뻔하다는 지적이다.
문홍빈(文鴻彬)생활개혁실천범국민협의회 간사는 『시의 장묘 행정이 현재와 같은 임기응변식에 머문다면 화장 캠페인을 중단해야 할 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박진용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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