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말은 오랜 자연의 경험에서 나온 지혜다. 부싯돌에서 튄 불똥이 날아가 들불이나 산불을 일으키고, 산불에서 튄 불똥이 날아가 초가삼간을 태우기도 한다.대개 불똥이 튈 만한 근거리에서 피해를 입지만, 때로는 엉뚱한 방향으로 바람이 불어 먼 곳에서 뜻밖의 피해를 입기도 한다. 장관부인들이 고급옷집에 몰려가 밍크코트를 입어보고, 재벌부인에게 은근히 로비를 권유하기도 했던 사건이 이 나라 모든 공무원 집안의 경조사에 타격을 주게 될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국무조정실과 행자부는 최근 「공직자 10대 준수사항」을 만들어 각신문 1면에 전단광고를 내는 등 열심히 홍보하고 있다. 내용을 읽어보면 당장 지킬 수 있는 항목들도 있지만, 지키기 어렵고 지켜지지 않을 것이 분명한 항목도 있다.
장관부인 옷 로비 사건등으로 공직사회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여론의 압력이 강해지자 벼락답안지를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지켜지지 않을 준수사항을 홍보하는 것은 무슨무슨 궐기대회처럼 안하느니만 못하다.
업무와 관련된 향응과 골프 금지, 경조사나 이취임시 꽃 수수금지, 5만원이상의 선물 수수 금지, 호화유흥업소와 고급의상실 출입금지, 고위공직자 부인모임 금지, 정당및 국회의원후원회 기부금지 등은 바람직한 내용들이다.
고위직 임명이나 승진 등을 축하하는 꽃 금지에 대해서는 화훼업자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축하꽃조차 금해야 하는가 라는 아쉬움도 있다. 그러나 대규모 개각이라도 있을 때면 관가로 배달되는 꽃 값이 줄잡아 수천만원에서 억대에 이르는 것이 현실이다. 우선 관가에서라도 축하꽃 사치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관가에서 솔선수범해야 할 일은 많다. 관혼상제도 그 중의 하나다. 공직에 있거나 공직에 있었던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호화생활을 하거나 시중의 사치한 풍습을 따라서는 안된다. 공직자는 검소하고 점잖게 살아가는 미덕을 자존심으로 삼아야 한다.
공직자가 천박하게 구는 것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직위를 이용해 경조사를 널리 알려서 경조비를 거두거나, 요란하게 경조사를 치르는 것 등은 모두 천박한 행위다. 공직자들이 치르는 조촐한 관혼상제가 하나의 본보기로 우리사회에 널리 퍼져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풍조는「윗물」에서 시작하여 자연히「아랫물」로 흘러가야 하며, 강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관혼상제에서 경조비를 주고받는 것은 상부상조의 오랜 풍습이고, 중산층이나 서민층에서는 이웃이 주는 경조비가 실제로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 풍습이 부패한 것은 고위층과 부유층의 책임이다. 그들의 얽히고 설킨 이해관계와 과시욕이 미풍양속을 벼락부자와 벼락출세자의 천민문화로 전락시켰던 것이다. 간혹 급이 높지 않은 공무원들 중에서 직책을 이용해 경조비를 거두는 경우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이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문제는 항상 특정부서나 고위직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과장급 이상의 공무원은 일체 경조비를 받을수 없도록 한 이번 공직준수사항은 해당 공무원들에게 타격을 줄 것이다. 경조비를 한푼도 받지 않고 경조사를 치를 수있는 여유있는 공무원은 극소수라고 봐야 한다.
또 경조비를 빙자한 뇌물을 받을 우려가 있는 직책의 공무원이나 고위직들은 지금처럼 비공개로 경조비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결혼식장에서는 축의금봉투에 공식적인 액수를 넣어도 되지만, 집으로 가져갈 때는 액수를 늘려야 한다』는 말은 지금도 흔하게 듣는 불평이다.
공직자 준수사항으로 가장 크게 손해를 보게 된 것은 부패할만한 자리에 있지도 않았고, 부패와는 인연이 없었던 보통 공무원들이다. 곗돈을 붓는 마음으로 이웃의 경조사에 부지런히 경조비를 보냈던 그들은 느닷없이 경조비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지침을 받게 됐다.
관혼상제 문화의 부패는 정치권의 부패와 연관이 있다. 「정치인」이라는 이름아래 막대한 돈을 꿀꺽꿀꺽 삼켜대는 풍조가 알게모르게 모든 국민생활을 부패시켜 왔다.
정치가 투명해지고, 지도층부터 관혼상제를 간소한 가족행사로 치르고, 청첩장 뿌리기나 요란한 잔치를 부끄럽게 여기는 풍조를 만들어가야 한다. 밍크코트는 장관부인들이 입어봤는데, 그 불똥이 엉뚱하게 가난한 공무원들의 경조비 봉투에 튄다는 것은 불합리하고 웃으운 일이다. /주필 msch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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