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아파트의 창 앞에는 단풍나무가 심겨있어 그 잎들이 건너편 아파트의 창틀로부터 사생활을 보호해주고 있다. 하지만 창문 아래에 대형 고무 쓰레기통이 놓여있어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뚜껑을 열 때면 악취가 고스란히 집안으로 풍겨온다. 쓰레기봉투 속에 든 것들은 한때는 새것이었거나 싱싱하고 달콤한 것들이었을 것이다.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려 집안을 다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쓰레기봉투 속에 쓸려가버렸다는 심증이 들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대형 고무통을 열었을 때 그 안에는 세 개의 쓰레기봉투들이 진물을 흘리면서 들어있었다. 내가 버린 쓰레기봉투를 식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봉투들마저도 다 뒤져야 했다. 그 속에는 3개월간 연체되었거나 통화정지된 삶이 있었고 애태우면서 쓴 연서들이 고깃고깃해져 들어 있었다.
단편 「곰팡이꽃」의 남자는 매일 새벽 쓰레기봉투를 가지고 올라와 그 안에 든 것들을 수첩에 적는다. 쓰레기는 가식과 숨김 없이 적나라하게 쓰레기를 버린 사람들에 대해 말해준다. 악취가 나는 쓰레기를 뒤지면서 남자가 바라는 것은 익명 속에 숨은 사람들을 호명하는 것이다. 우연히 이웃집 여자와 여자의 애인인 사내의 싸움에 말려들면서 남자는 이웃집 여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여자와 만나고 싶어하지만 늘 한발 늦는다. 베란다에 널린 흙물이 채 지워지지 않은 양말 한 켤레와 빈 복도에 흘리고 간 섬유 유연제의 미모사 향만이 그 여자의 흔적이다. 여자의 쓰레기를 뒤지면서 여자의 진실에 대해 알게 되지만 이미 여자는 종적을 감춘 후다.
추측만이 무성한 시대다. 단풍나무 잎사귀 뒤에서 나는 정말 만족스러울까. 남자는 여자의 애인과 아파트 뒤뜰 덤불 속에서 여자가 내던진 돌하루방을 찾으면서 중얼거린다. 『도대체 알 수가 없다니까. 진실이란 것은 모두 쓰레기 봉투 속에서 썩어가고 있으니 말야』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은 호명과 그에 대한 응답이다./소설가·95년 등단·소설집 「루빈의 술잔」 장편 「식사의 즐거움」·「곰팡이꽃」으로 99년 동인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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