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불바다」 발언의 장본인인 박영수(朴英洙)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부국장이 5년만에 남북차관급회담 북측 수석대표로 나서 북한 당국의 의도를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박수석대표는 94년 3월 19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특사교환 실무접촉 도중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은 데, 전쟁이 나면 불바다가 될 것』이라는 위협적 언사로 회담을 결렬시켰다. 서해 교전사태 직후, 박수석대표가 다시 전면에 나타난 데 대해 우리측에서 미묘한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는 박수석대표가 등장한 것을 도리어 긍정적인 조짐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박수석대표가 북측에선 오랫동안 이산가족문제를 전담해온 전문가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박수석대표는 북한 이산가족 사업의 「산 역사」이며, 그런 점에서 전금철(全今哲)아태평화위 부위원장보다는 나은 상대』라면서 『북측이 이번 회담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놓고 실무적인 협상을 진행시키겠다는 의도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단 그는 언제나 대화를 결렬시킬 수 있는 「회담기술자」이기도 해 낙관은 금물』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산가족문제와 관련한 엇갈린 경력을 갖고 있다. 그는 85년「조선적십자회 동포사업부장」 자격으로 제8차 남북적십자회담에 참가, 그해 이산가족방문단과 예술단의 상호방문을 성사시켰다. 당시 교환방문은 40년만의 첫 민간차원 인적 교류였고, 그는 북측 실무수석대표로 사업을 실질적으로 주관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89년 느닷없이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의 서울공연을 요구하면서 정례화하기로 합의한 교환방문사업을 무산시키기도 했다.
박수석대표는 「불바다」발언 이후 공식무대에서 사라져 한 때 문책을 받았다는 관측이 나왔었다. 그는 98년 베이징(北京)남북해외동포학술회의에 나타나 『불바다 발언은 남측이 거두절미해 와전시킨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베이징=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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