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에서의 남북간 교전이 발생한지 만 사흘이 다돼가는데도 북한은 별다른 군사적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도로 남측의 도발을 격퇴했다고 선전하던 북한이 교전에서 패배, 김위원장의 영도력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는데도 이같이 조용히 반응하는데 대해 해석이 분분하다.또 햇볕정책의 기초이념인 정경분리원칙에 대해서도 반론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이 두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았다. 정리=이은호기자 leeeunho@hk.co.kr
질문
①북한은 왜 보복공격을 하지 않나
②우리 정부의 정경분리원칙을 평가해달라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①이번 사태를 미국에 대한 북한의 메시지라고 보는 견해가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같다. 북한은 꽃게잡이 어장확보와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문제제기 차원에서 단지 무력시위를 하려 했다. 북한이 교전 당시나 직후에 어뢰발사, 미사일공격 등 더 강력한 대응을 할 수 있었고 이것이 미국에 대한 확실한 메시지였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점에서 북한의 입장을 읽을 수 있다.
또 북한은 남북대화가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인 북미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전제임을 잘 알기 때문에 교전을 통해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사실 무력시위가 교전에 이른데는 북한의 NLL침범에 대한 강경대응을 요구해온 남한 내 보수여론의 책임도 크다.
따라서 현재 북한이 보복을 시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며 나아가 남북대화도 계속 진행시킬 것이다. 그러나 교전사태가 일시적 돌출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21일 차관급회담도 연기되든지, 열리더라도 이번 사태의 사과 등을 들고 나와 다소간 거북이 걸음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남북대화 추진이라는 기본줄기는 변함이 없다.
②북한이 민간교류를 받아들이지 않아 정경분리가 불가능하다면 모르지만 현상황에서는 정경분리는 매우 효율적인 통일방안이다. 같은 맥락에서 비료지원 금강산관광 등도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정경분리라고 해서 남북관계를 민간교류로만 방치하지는 말아야 한다.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간 정치·군사문제에 대한 기본적 합의를 이뤄내지 않으면 이같은 사태가 되풀이돼 애써 만든 민간교류마저 단절될 가능성이 있다. 또 사문화한 기본합의서를 되살리고 이 원칙에 따라 NLL을 비롯한 정치·군사문제를 논의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배진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①이번 교전사태는 북한이 미국에게 북미평화협정의 필요성에 대한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것이다. 코소보사태가 마무리돼 미국이 북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시점까지 정확하게 포착한 것으로 보인다. 일주일 넘게 NLL을 침범하는데도 미국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자 교전까지 벌인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원론적인 대응만 했을뿐 북한의 이번 도발에 대해 그다지 유념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더욱 확실한 메시지를 준비하고 있는 게 확실하다. 미군이 최근 한반도로 전력이동을 한 것도 북한의 도발 움직임을 감지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이미 기정사실화한 도발을 언제 어떻게 감행하느냐를 숙의하는 도발준비기인 것이다. 깜짝 놀랄만한 도발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기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만약 도발한다면 이미 사건이 커져있어 메시지가 잘 전달될 서해에서 해상도발을 재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②정경분리정책은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다. 독일도 오랜 민간교류를 통해 국가통합이라는 정치적 성과를 거두었음을 지적하고 싶다. 문제는 정경분리라는 원칙이 너무나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어 북한이 「도발을 해도 전쟁은 나지 않으며 손해도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비록 정경분리의 원칙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좀더 가변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 정책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다. 이런 관점에서 군사·안보문제를 지금처럼 햇볕정책으로 대변되는 정치문제의 일부로 취급하지 말고 별도로 분리하는 것이 유리하다. 안보가 정치·경제와 분리되면 햇볕정책이라는 정치원칙은 원칙대로 고수하면서 이번과 같은 사태에 좀더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서동만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①북한의 의도는 명백하다. 정전협정을 무력화하고 한반도에 위기를 조성해 미국으로 하여금 북미평화협정의 중요성을 일깨우려고 군사시위를 한 것이다.
이번 사태가 윌리엄 페리 대북조정관의 방북 직후, 남북차관급회담 직전, 코소보사태가 평화적으로 해결돼가는 와중에 발생했다는 점은 이같은 사실을 입증해준다. 그렇다고 북한이 북미회담만 추구하고 남북회담은 완전히 포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남북간 관계개선을 추구하되 미북간 관계정상화가 핵심고리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판문점등 내륙이 아닌 해상을 택한 것은 이때문이다. 북한의 제한된 도발, 즉 군사시위는 교전에까지 이른 현재 상황에서 확실하게 효과를 거둔 것으로 판단된다. 문제는 북한이 교전에서 철저하게 패배했다는 점이다.
자존심이 상했고 전력의 열세가 드러났다. 따라서 북한 내부에서는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했다』며 보복을 반대하는 쪽과 『상처난 자존심을 회복해야 한다』며 보복을 주장하는 쪽이 격론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는 보복의 실익을 평가하는 도발검토기라고 볼 수 있다.
②냉전하에서 일본이 구 소련 및 중국과 경제교류를 추진한 뒤 여기서 마련된 공동의 이익을 바탕으로 수교에 이른 것에서 보듯 정경분리는 성공사례가 많은 대외정책이다. 북한이 정경분리를 믿고 이번 도발을 감행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이 말은 양측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는 의미도 함축하기 때문에 이번 사태 역시 정경분리정책의 효율성을 입증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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