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연예인 두 명과 공개 데이트를 하고 한 명을 선택한다. 학창시절 그 아스레한 첫사랑을 찾아 나선다. 모든 가족에게 푸짐한 선물을 타주기 위해 3분내 줄넘기 200번에 도전한 가장. 골든 벨을 울리기 위해 50문제를 놓고 고군분투하는 고등학생들. 젊은 남녀들은 스타와의 뮤직 비디오를 찍는 영광을 얻기 위해 길거리에서 몸을 내던진다. 마을을 선전하는 CF를 찍고 도시에 나가 있는 자식들을 향해 『내 걱정하지 말고…』 눈물의 안부를 전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시청자, TV상자 안으로
시청자가 TV안으로 들어갈 때 TV는 바보상자란 혐의에서 어느정도 자유로울 수 있다. 시청자 입장에선 일방통행식 전달의 수동적 TV가 아니라 쌍방향의 능동적 TV로 바라볼 수 있다. 방송참여는 TV의 권력에 대한 시청자의 유일한 무기이기도 하다.
방송소재 제공에서 게스트 출연, 프로그램 주인공에 이르기까지 방송의 시청자 참여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심지어 시청자가 직접 등장하고 제작한 프로그램까지 선보이고 있다. 참여 계층도 어린이에서 학생, 주부, 회사원,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KBS 「세상체험 아빠와 함께」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 MBC 「우리 용서합시다」 「베스트 토요일」, SBS 「서세원의 좋은 세상만들기」 「남희석 이휘재의 멋진 만남」 등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이 40여개에 달할만큼 늘어났다.
왜 늘어나는가
시청자의 주권 회복이란 차원보다는 스타 의존형 프로에 대한 시청자의 염증과 방송소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측면이 크다. KBS 「아침마당」 의 김형일 PD. 『시청자 참여 프로는 가공되고 연출되는 연예인 중심의 프로와 달리 리얼리티를 살릴 수 있고 진솔한 일상의 모습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최대의 강점』이라며 『그래서 같은 입장에 서 있는 시청자들로부터 공감을 쉽게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IMF사태 이후 방송사의 제작비 절감 필요성이 낳은 부산물 성격도 짙다. 매스미디어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의 참여에 대한 호기심과 욕구 충족도 큰 원인. 5월 22일 SBS 「남희석 이휘재의 멋진 만남」에 출연한 김명진(27·여)씨의 출연 소감. 『연예인과 데이트 한 것이 방송에 나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방송 출연은 생활의 활력소가 되었다』 이 프로 방영 두달만에 공개데이트를 희망한 젊은 여자는 1,500여명. 대단한 열기다.
야누스의 얼굴
시청자 참여 프로는 일정부분 시청자 주권 확보라는 차원에서 긍정적이다. 일반인들의 진솔한 삶의 경험과 연륜, 생활의 진지함, 그리고 의견을 보고 들을 수 있다. KBS 「아침마당」이나 MBC 「칭찬합시다」가 인기를 끄는 것은 이같은 이유.
하지만 시청자를 단순히 연예인 프로에 끼어넣기식 소도구 역할로 전락시켜 형식만 시청자 참여인 프로가 너무 많다. 또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도 다반사. 방송에 부적합한 소재와 표현이 여과없이 노출되거나 어린이 노인들이 무차별적으로 희화화하는 문제점도 있다. 대표적인 시청자 프로중 하나인 MBC 「우리 용서합시다」. 지체 장애인과 결혼한 딸이 친정 어머니에게 용서를 비는 내용의 최근 방송분. 진행자가 지체장애인 남편을 마치 엄청난 범죄 행위를 저지른 것처럼 취급하며 용서를 강권하는 모습을 연출, 「용서받지 못할 프로」라는 비난을 받았다. SBS 「기분좋은 밤」은 한동안 시청자의 사생활을 몰래 카메라로 엿보는 방식을 채용, 모든 시청자를 관음증으로 내몰았다. 방송위원회가 5월 한 달 동안 주의·경고를 내린 프로 90개중 12개가 시청자 참여 프로였다.
공감만이 진정한 감동을
시청자가 자발적, 주체적으로 방송 내용과 제작 방식에 참여할 때만이 비로소 진정한 의미가 살아날 수 있다.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원용진 교수는 『무조건 시청자가 참여했다고 시청자 주권이 확대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청자가 TV의 오락성이나 선정성에 이용당할 수 있다. 시청자와 제작진이 기획의도를 비롯한 방송제작과 내용에 공감하고 공동생산할 때 비로소 시청자 참여 프로의 의미와 감동을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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