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우·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다이옥신 파동으로 양돈사육농민은 물론 전국민을 우울하게 하는성 싶더니만 배추값 폭락으로 농민들을 더욱 슬프게 하는 요즈음인 것 같다.
과잉생산으로 인한 출하가격의 폭락으로 산지의 배추를 갈아엎거나 폐기처분하고 있다는 보도는 예전에도 주기적으로 접해오던 농산물 가격파동의 단적인 예로서 우리 농정의 문제점을 여지없이 노정하고 있어 가슴 아프다.
상품의 가격이 오를 것을 예상하면 생산량을 늘리고, 내릴 것을 예상하면 줄이는 것이 바로 시장의 공급법칙이다. 시장에서 유통되는 대부분의 재화는 시장의 가격기구에 의해서 수급량이 조정되어 적재적소에 배분된다.
천만이 넘는 인구가 모여 사는 서울의 나날을 연상해 볼 때 시장의 기능은 경이롭다고 아니할 수 없다. 서울시민들이 매일의 생활을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재화와 용역을 필요로 한다. 이들 재화와 용역은 전국 방방곡곡의 수많은 생산자들에 의하여 생산되어 서울로 집결될 뿐만 아니라 세계도처로부터 운송되어 각 가정이나 직장에 공급된다. 시장기구는 어떠한 방대한 컴퓨터도 풀 수 없는 복잡한 경제문제들을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바로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의 자원배분기능에 의한 것이며 이 과정에서 정부의 간섭은 요구되지 않는다.
그러나 농산물의 경우에는 기후변동에 따른 공급량 변화, 신선도 유지, 보관상의 어려움 등 때문에 정부의 정책개입이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가격안정이나 유지를 위해 중차대하다.
전년도의 농산물 가격이 예년에 비해 높았다면 이를 근거로 대다수 농민들은 경작면적을 늘려 과잉생산이 우려되었고 그 이듬해엔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 종래의 경험이었다. 이번 배추값 폭락의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재배면적의 과학적인 추정에 기초하여 농민들의 과잉생산을 사전에 예방했어야 할 당국의 행정이 그 첫 번째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여기에다 행정당국의 정책이나 지도를 신뢰하지 않는 농정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 주기적인 농산물 가격파동을 자초하지 않았나 반성해야 할 것이다.
고추, 양파, 마늘파동에서부터 소·돼지값 파동에 이르기까지 농정의 부재는 끊임없이 진행되어 왔고 이러한 실정(失政)이 농민들의 불신을 유발했으리라 충분히 짐작된다. 오죽하면 『정부정책에 역행하는 것이 이득이다』라는 냉소적인 농민들의 반응이 나올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그 불신의 정도가 짐작이 간다. 수년 전 정부권장 볍씨 품종의 냉해(冷害) 때문에 시름에 잠긴 농민들의 하소연이었다.
우리 농업은 좁은 국토, 척박한 농지 등 생산성 향상을 통한 농가소득증대에 근본적 문제점을 안고 있는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 과거 4반세기 동안 농업부문 성장률은 경제성장률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였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해마다 추곡수매량과 수매가격 결정을 둘러싼 진통,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농산물 가격파동, 소득증대를 위한 예산의 비효율적 운용, 농협 등 농민관련 공공기관의 비생산적 경영, 누적되어온 농가부채 등 농업관련문제는 도처에 깔려 있다. 열악한 농업환경을 보완할 수 있는 치밀하고 과학적인 농정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농업은 영원히 낙후될 수밖에 없다. 공급이 달리는 농산물은 마구잡이로 수입하고 공급이 넘치는 것은 갈아엎는 주먹구구식 농정으로는 농업선진화는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 농가의 재배면적을 일정 부분 놀릴 경우 정부의 보조금이 지급되어 농산물 가격안정, 생산성향상, 농가소득보장 등 다양한 효과를 지속적으로 누리고 있다. 이번 배추값 파동을 과학적 농정을 정립하는 계기로 삼아 농정의 일대 쇄신을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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