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저녁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에서 열린 자민련 의원·당직자 만찬에서 마이크를 잡은 인사들은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김대통령이 10여분간의 인사말을 통해 국정개혁 의지를 강조한 뒤 8명이 발언에 나섰으나 평소 가슴에 품었던 생각을 속시원히 털어놓은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홍선기(洪善基)대전시장 심대평(沈大平)충남지사 등이 최근 대통령의 국립묘지·논산훈련소 방문을 거론하며 『대단히 좋았습니다』고 한 것은 정부의 예산지원에 목을 매야 하는 단체장들의 입장을 감안하면 이해못할 바 아니다. 하지만 자민련 의원들은 사정이 다르다. 청와대에 가기 직전까지만 해도 『청와대 측근들이 대통령의 눈과 귀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던 그들이다. 그런데 막상 대통령과 같이 한 자리에서는 여당 단독 국정조사 방안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나 특별검사제 도입 문제에 대해서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강창희(姜昌熙)총무만이 『여론이 나쁘다』며 『국회문제는 양당총무에게 맡겨달라』고 완곡화법을 썼을 뿐이다.
1시간 30여분간의 만찬을 끝내고 청와대측이 준비한 10만원짜리 상품권 5장을 받아든 의원들은 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할 소리를 못했으니 밥값을 못한 것 같다』『뒤에서 딴 소리를 하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었나』『경제가 잘되고 있다고만 얘기했으니…』 등등. 일부 의원들은 『한번 쓴소리를 해볼까 생각했는데 발언자를 지명했기 때문에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며 겸연쩍어 했다. 청와대에서 목소리가 잦아든 자민련 의원들의 모습에 대해 당의 한 관계자는 『「그대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라는 유행가 가사가 떠오른다』며 씁쓸해 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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