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연출가 오태석40년전, 연세대학교 대강당 무대에서 노교수 일곱분의 정년퇴임식이 거행됐다. 그 중에는 철학자 정석해, 국문학자 김윤경, 영문학자 심인곤 등 당대 석학 세 분이 끼여 있었다.
한분씩 차례로 교탁을 잡고 한마디씩 퇴임사를 하셨는데, 유독 심인곤 선생님은 할말이 없다고 버티셨다. 그래서 참 어처구니 없는 침묵_묵도가 시작됐다. 그러기 5분여. 그 큰 강당이 사람 하나 없이 텅빈 듯 적막해졌다. 그러다 문득 심인곤 선생님이 벌떡 일어서서 우뢰처럼 내지른 말씀, 『쇠꼬랑지 말고 닭대가리가 되라!』 더하고 뺄 것 없는 이 한마디였다.
이 책은 좋고 저 책은 나쁜 것이다, 저 곡은 나쁜 곡이고 이 곡은 좋은 음악이다… 그렇듯 분명하고 명쾌하게 자기 소신을 밝히는 사람을 보면 그만 우러러 보게 되고 그의 소견이 내 소견인 양 쉽게 바꾸어버리던, 참으로 줏대 하나 가진 것 없이 살아오던 내게 「쇠꼬랑지」는 바로 우뢰소리 청천벽력이었다. 얼굴이 벌게 가지고 내가 쇠꼬랑지란 말이지_아니지, 그래서는 안 되지.
쇠꼬랑지 면할려고 40년이 지나가고 있는 이 시간, 거울 앞에 서 보지만 그저 쇠꼬랑지 그대로 요만큼도 변한 것이 없다.
양주산대 인간문화재 양도일선생님께 연극에 쓸 춤 좀 가르쳐 달랬더니, 『아홉살에 출가해서 엊그제 환갑을 말아먹었는데도 내 아즉 노장춤을 못추요』 춤판에 50년 넘게 「뒹굴었는데도」 송낙에 장삼 걸치고 지팽이 들고 떠는 춤 한자락 못 춘다면서 손 내젓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 넘었다. 당시 평생을 바친 춤을 두고서도 소견이 이렇듯 겸손하시니, 남의 소견이나 넘보는 내가 내 소견을 갖기는 장차 20년, 40년이 지나도 난망이다.
심인곤선생님 벌써 오래전 명부(冥府)에 가고 안계시니, 그 닭대가리, 연필로라도 그려가지고 쓰고 다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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