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유걸·배두나 -한때 「신세대」와 「쉰세대」의 구분법은 최불암 시리즈와 사오정 시리즈를 듣고 웃느냐, 안 웃느냐였다. 그럼 요즘의 구분은?
「판(判)소리 신드롬」과 「두나 신드롬」의 주인공을 아는가다. 두 증후군의 진원(震源). 판유걸(18·일산 대진고 2년)과 배두나(20·한양대 연극영화과 1년). 두 사람 모두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진 벼락스타다.
수많은 청소년들은 배두나의 이미지에 열광하고 판유걸의 실체에 일체감을 느낀다. 청소년들의 새로운 우상이 태어났다.
◆판유걸
독특한 성씨와 악 한번 잘 써 고교생 스타가 되어버린 판유걸. 8일 오전 9시45분 신문사 인터뷰실로 들어오는 모양새가 그답지 않다. 축 처진 어깨와 무거운 발걸음. 새벽 5시까지 진행된 SBS 시트콤 「행진」촬영에 지친 탓. 평범한 고교생이 스타로 변해가는 진통일까.
그러나 인터뷰가 시작되자 전형적인 얄개로 돌변한다. 『저요! 스타 아닌데요. 그런데 학교에서 결석해도 나무라지 않고 PC통신 들어가서 판유걸이라고 밝히면 상대방이 사기치지 말라고 하는 걸 보면 제가 유명하기 유명한가 봐요』 너스레다.
지난해 10월 SBS 「우리 기쁜 토요일」 의 「가슴을 열어라」 코너 출연이 오늘의 판유걸을 있게 했다는 건 알 사람은 다 안다. 예상치 못한 출연이었다. 방송 한 번 타는 게 평생 꿈이었는데 예선탈락. 하지만 녹화 당일 한 친구가 펑크를 내는 바람에 대타로 출연하게 됐다.
학교 옥상에서 양팔을 차례로 벌리며 배를 쑥 내미는 그 유명해진 동작을 하며 『왜 판(判)씨를 몰라주는 겁니까! 나, 판! 유! 걸!』 이라고 악을 썼다. 청소년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까지 선명하게 각인된 두가지 반응. 『재미있는 친구네』와 『세상에 판씨가 다 있어』
매니저와 방송사 PD들이 이를 놓칠 리 만무하다. SBS 「기쁜 우리 토요일」 제작팀은 게스트로 초대했다. 이어 이달 초 시작된 SBS 시트콤 「행진」에 당당히 주연으로 캐스팅됐다.
콜라와 라면회사도 그를 광고 모델로 내세웠다. 매니저까지 붙었다. PC통신의 팬클럽인 「판소리」와 「마이걸」 회원만 15만명. 그가 세상에 알려진 지 8개월만의 일이다.
『해주 판씨인데요. 남한에 200명이 사는데 제가 가장 유명해요』 여드름이 쏭쏭난 그는 외양으로는 여느 고교생과 다를 바 없다.
청소년들은 그에게 왜 열광하는 걸까? 『제가 너무 평범하고 장난기가 많아 부담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왜 미팅 신청이 안들어오는 거죠?』 그의 능청스런 대답이자 사실이다 .
바로 이런 그의 꾸밈없는 모습이 그를 동류의식의 대변자로 만들었다.
눌러 쓴 모자 끝에 흰머리가 보여 벌써 새치냐고 물었더니 「행진」에서 대학생으로 나와 노숙하게 보이려고 염색했다고 말한다. 『많이 혼나요. NG도 많이 내고요. 많이 공부해야 한다는 걸 느꼈어요』
학교에서 연극반 활동을 하고 있는 판유걸은 용돈이 월 3만원에서 5만원으로 오른 게 달라진 것이라고 한다. 어리지만 소망이 없을까? 『최불암 선생님처럼 되는 거요. 40여년 동안 변함없이 좋아하는 연기를 하잖아요. 인기가 떨어지면 사라지는 반짝 연기자는 되기 싫어요』 요즘 성적이 급전직하하고 있지만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 꼭 진학하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인터뷰실로 배두나가 들어섰다. 『앗!』 소리치며 하는 말. 『누나 전화할께요, 1시간 30분 동안 누나 흉봤거든요』
◆배두나
갈 지(之)자 걸음에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들어오는 배두나. 『헛! 유걸씨! 잘 지냈어요?』 개구리 왕눈이 같은 큰 눈을 깜빡거리며 인터뷰중인 판유걸에게 아는 체 한다.
화면에서 구축된 고독하고 반항적인, 그러면서 도발적인 배두나의 이미지를 연상했기 때문이었을까? 장난기 섞인 말투와 경쾌한 몸짓이 낯설기만 하다.
그녀의 전매특허가 돼 버린 레이어드 커트머리(층이 진 머리)는 「두나 스타일」로 불린다. 청바지에 넓은 천을 겹쳐 입은 배두나. 『이미지가 성격도 변하게 하나 봐요. 예전에는 여성스러운 치마만 입었는데 요즘에는 보이시(소년같은) 분위기 복장이 좋아진 것을 보면요』
4월 종영한 KBS 「학교」 라는 드라마 한 편은 그녀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실명과 동일한 배두나로 등장한 「학교」는 그녀를 반항과 우울함이 교차하는 중성적 이미지의 상징으로 떠오르게 했다.
그리고 요즘 출연하는 KBS 「광끼」에서도 반항적인 고독한 아웃사이더 전문대생 역할로 기존의 이미지를 이어가고 있다. 『요즘은 이미지로 승부하는 시대여서 캐릭터 강한 배두나 역이 먹혀들어간 것 같아요. 당분간 이 분위기를 유지하고 싶어요』
그녀는 『학교의 억압적인 분위기와 공부에 짓눌린 청소년들이 극중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얻거나 카타르시스를 느끼나봐요』라고 자신의 인기 요인을 분석한다. 그의 인기가 얼마나 높은 지는 「아롬이」 「나두 나두」 등 팬클럽이 급증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머니 친구분들이 알아보고 옆집에 사는 사람들이 쳐다볼 때 유명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녀는 지난해 길거리에서 캐스팅됐다. 의상업체의 카탈로그 제작자가 외모를 보고 명함을 내밀었다. 『길거리 캐스팅이 사기가 많다고 해 신경쓰지 않다가 재미삼아 전화했더니 오라고 해 의상사진 모델 일을 하게 됐어요』 이후 잡지 등 인쇄매체 광고 모델로 활동하다, 지난해 12월 KBS 공개오디션에 참가, 「학교」에 출연했다. 12일 개봉하는 영화 「링」에 출연했고 SBS 라디오 「두나 승현이의 텐텐클럽」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휴학중.
고등학교 때는 반에서 1~5등 했던 우등생.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 김화영씨의 연극 연기를 보면서 자랐다. 『이효재 선생님하고 어머니가 공연한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라는 연극을 보면서 연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았어요』
인기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을 던졌다. 인터뷰 내내 신문지에 만화를 그리며 낙서를 하던 그녀가 울 것 같은 눈을 하고 『「학교」끝날 때 함께 출연한 신구 선생님이 「연기는 평생해야 하니까 드라마 한 편 잘 됐다고 좋아할 것도 없고 반응이 나쁘다고 슬퍼할 것도 없다」라고 말씀하신 걸 새기고 있어요』라고 답한다. 배두나는 인사하며 깡총깡총 뛰어 나갔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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