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정말 할 말이 많았다. 김대통령은 10일 저녁 국민회의 국회의원·당무위원을 청와대로 초청, 만찬을 하면서 무려 1시간 10분동안 최근 시국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았다.이날 만찬은 국민회의 김영배(金令培)총재대행의 인사말, 이만섭(李萬燮)고문의 건배제의에 이어 저녁 6시반부터 시작, 사실상 7시40분께 끝났다. 이어 김대통령은 유례없이 긴 시간동안 답답한 심사, 고통스런 흉중을 내비쳤다. 김대통령은 특히 왜 김태정(金泰政)전법무장관을 기용했고, 왜 옷 사건에서 유임시켰으며, 왜 진형구(秦炯九)전대검 공안부장 발언파문에서는 해임했는가를 설명하는데 애를 썼다.
김대통령은 『솔직히 얘기하겠다』면서 『김태정씨를 법무장관에 임명한 이유는 그가 바른 법조인의 자세를 갖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지난 대선때 청와대 사직동팀이 「김대중 비자금」사건을 조작, 한나라당에 발표토록 했다』면서 『만약 검찰이 수사했다면 선거에 졌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나중에 거짓으로 판명나더라도 이미 상당한 표를 잃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김대통령은 『그 때까지 김태정 당시총장과는 일면식도 없었다』면서 『김태정씨는 주변, 검찰내 압력을 물리치고 선거후 수사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이 선거에서 이길 수 있어 검찰내에도 수사의견이 많았지만 김태정씨는 선거에 악용될 수 있다는 판단, 이를 거부했다는 게 김대통령의 「바른 법조인, 김태정론」이었다.
김대통령은 옷 사건에 대해 「유죄 문책, 무죄 유임」의 논리를 거듭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검찰 수사에서 김태정씨 죄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야당과 언론도 다른 증거를 못댔는데 어떻게 해임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김대통령은 『과거에도 함께 일한 사람들이 나를 버리지 않는 한 희생시킨 적이 없다』며 『야당총재로도 그랬는데 하물며 대통령이 여론 때문에 장관을 문책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솔직히 망설였다』면서 『유임시키면 여론이 악화할 것이고 해임하면 잘했다고 할 것을 알았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김대통령은 그러나 『만약 대통령이 여론만으로 장관을 문책하면 장관들이 국가나 대통령을 위해 충성하지 않고 다른데 눈치를 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왜 파업유도 발언파문에서는 결론이 나지않았는데도 해임했는가. 이 물음에 김대통령은 『이번 일이 사실이면 큰 일이고, 실언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말했다. 김대통령은 『백주에 폭탄주 먹고, 기자에 실언하고, 정부에 타격주고, 노동자들을 피눈물 나게 했는데 … 이런 일에 장관이 책임 안지고 어떤 일에 책임지느냐』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내가 한 일이 다 훌륭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양심에 입각해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하루를 하더라도 바르게 하려고 대통령이 됐다』면서 『권력을 사적 동기에 이용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김대통령은 『길게 봐야 대통령은 5년이고 벌써 1년반이 지났다』면서 『이 김대중과 함께 한 게 두고두고 자랑이 되도록 옳은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다. 숨죽이고 듣던 의원, 당무위원들은 우레같은 박수로 화답했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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