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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마음] 남부럽지 않은 우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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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마음] 남부럽지 않은 우리집

입력
1999.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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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고 얼마안된 어느 날이었다. 이사와서 알게 된 앞동의 수홍엄마가 아기를 데리고 놀러왔다. 수홍엄마는 우리집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어머, 집안을 예쁘게 해놨네요. 없는 것도 없구요. 이 집 아기는 장난감도 많네요. 화장대도 콘솔같이 심플한 게 예쁘네요』.그러더니 베란다에 가선 『부부탁자인가 봐요. 고급스러워보이네요. 여기서 차마시면 피로가 확 풀리겠어요. 어머, 유진엄만 취미가 그림그리기인가봐요』라는 것이었다.

남편이 공무원인 수홍엄마는 『우리는 IMF체제로 월급이 더 빠듯해져서 커튼 봉 하나 사는 것도 여지껏 미루고 있었어요』하며 집안을 둘러보며 연신 부럽다는 듯 말한다.

나는 수홍엄마가 끝없이 말하는 통에 말할 틈이 없어 듣고만 있다가 『수홍엄마, 우리 아기 아빠도 공무원이에요. 그런데 우리집은 부족한 것이 없어 보여도 돈주고 산 것은 별로 없어요』라고 말했다.

장난감은 아파트 분리수거대에서 주워와서 깨끗이 씻어 쓰고 있고 새 것같은 화장대는 중고가구점에서 4만원, 거실의 장도 5만원에 샀다. 수홍엄마가 예쁘다고 했던 부부탁자는 친정에서 얻었다. 커튼이며 쿠션, 방석은 미싱을 배워 직접 만들었다.

벽에 걸린 그림들은 모두 내가 그렸다. 나는 수홍엄마에게 『생활비가 넉넉하지 않은 우리집에서 제가 취미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은 생활수기 공모에 가끔 응모해서 받은 상 덕분이랍니다』라고 일러주었다.

우리집 살림살이의 내막을 말해주자 수홍엄마는 『어머 그래요』하며 큰 눈을 더욱 크게 뜨고 『알뜰하다』고 좀전의 감탄과는 다른 말을 토해낸다. 나는 칭찬에 기분이 좋아져 『필요한 것은 얻어쓰거나 중고를 사면 돈을 크게 들이지 않고도 집안을 예쁘게 꾸밀 수 있어요』라고 말하고나니 왠지 쑥스러웠다. 사실 나는 일년내내 화장품을 사는 법이 없다. 라디오 프로그램 등에 엽서를 보내 채택되면 화장품을 경품으로 받을 수 있다. 옷값은 글쎄? 일년에 5만원도 안된다. 얼마전 전 장관부인이 수천만원짜리 밍크코트를 입었느니 안입었느니 하는 논란이 벌어졌다.

그러나 나에겐 그 분들이 다른 세상 사람같고 부럽지 않다. 집안엔 값나가지 않는 물건만 있고, 비싼 옷을 입지 않아도, 돈이 많지 않아도 남부럽지 않은 것은 마음이 부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한숙·경기 의정부시 녹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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