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이제 원이 없제』 『예, 없십니더』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내외가 9일 오전 원주에서 열린, 박경리(朴景利)씨의 대하소설 「토지」의 정신을 기려 만든 「토지문화관」 개관식에 참석했다. 대통령이 문학 행사에 참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 참석자들은 모두 놀랐다.
김대통령은 치사에서 「토지」의 주인공 「월선」이 애인 「용이」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두는 이 마지막 대화를 인용했다. 『토지에서 내가 가장 감명깊게 읽은 부분』이라며 『우리 한국인의 한(恨)의 본질을 보여준 그 사랑에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털어놓았다. 「신지식인론」이나 경제적 측면에서 문화예술의 진흥을 강조한 대통령의 다른 치사 내용보다 이 한 구절의 소개가 참석자들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김대통령은 25년간, 4만장의 원고에 「토지」를 집필해 한국문학사의 기념비를 세운 박씨를 치하했고, 박씨는 자신이 펼치고 있는 「환경·생명」운동에 바탕한 문화론으로 답했다. 정치나 행정의 대상이거나 저만치 별개로 존재하는 문화가 아니라, 사람끼리의 의식인 만남으로서의 문화가 상징적으로 드러난 현장이었다. 행사후 박씨는 이희호(李姬鎬)여사의 허리를 잡고 대통령을 배웅했다. 대통령 내외는 문화관 문을 나서면서 근처에 삼삼오오 모여있던 촌로들과도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이 촌로들이 다름아닌 「토지」의 주인공들 아닌가. 「토지문화관」이 진정한 한국문학의 열린 공간이 되고, 더 많은 이런 문화공간이 생기고, 대통령뿐 아니라 더 많은 한국인들이 저마다의 「한 구절」을 가슴에 지니고 만날 때, 우리 문화는 자연스레 꽃피지 않을까.
하종오 문화부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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