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학 갤러리 현대서 한용진.오수진과 3인전 -못생긴 얼굴을 흔히 메주같이 생겼다고 말한다. 그 메주로 얼굴을 빚었다. 메주덩이를 이용해 제작한 브론즈가 뭉실뭉실 참말로 못생겼다. 하지만 볼수록 정감나는 얼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21일까지 갤러리 현대에서 한용진 오수환씨와 함께 3인전을 열고 있는 조각가 이영학씨의 브론즈 작품 「얼굴」이다. 이들 3인은 백수(白手) 장욱진(1917~1990) 화백의 수제자들. 이영학씨는 서울대 미대 조소과 출신이다.
「얼굴」에서 보여주듯 이영학씨는 조각가론 드물게 한국의 미를 추구하는 개성적인 작가이다. 서구조각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무려 6년간 유학생활을 했으면서도 그의 작품엔 서양풍이 전혀 배어있지 않다.
87년 귀국하면서 「서양조각은 하지 않겠다」고 다졌던 초심(初心)이 10년 넘은 세월에도 끄떡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눈길을 끄는 그의 작품중 하나는 「어머니」. 브론즈와 화강암을 이용해 만든 몽우리돌 무더기다. 돌 하나하나엔 크고 작은 글씨로 「어머니」를 새겨넣었다.
켜켜이 쌓아올린 돌 들에서 작가의 옹고집, 그러면서도 장난기를 잃지않은 한국인 특유의 해학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또 평생 어머니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땅 토종 한국남자들의 착한 심성까지도.
이외에도 이번 전시회에 그는 부엌칼 호미 불화로 등 온갖 잡동사니와 돌조각을 두꺼비 같은 손으로 갈고 붙이고 구부리고 잘라 만든, 된장 냄새 풀풀 나는 여러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능청스런 표정으로 서 있는 다양한 화강암 입상들은 이 풍진 세상 구수하고 수수하게 살아보자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 징그러울 정도다. 칼날처럼, 송곳처럼 신경이 곤두선 우리들에게 「좀 쉬었다 가자」며 소매를 잡아당기는 것 같은 작품들이다.
그는 요즘 집에선, 바티칸에 있는 한국 성당을 위해 김대건 순교자상을 만들고 있다. 대나무 가득 심어진 정원을 앞에 둔 수유리 작업장에서.
어느날 그의 절친한 벗 한수산은 그의 집에 놀러와 넓고 긴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힘들게 작품 만들거 없네. 이 사람은 그냥 받침대 하나만 잘 만들어서 자기 얼굴을 거기 얹어 놓아도 작품 하나는 되겠네」.
/송영주기자 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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