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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 "잘못 잡아준 기자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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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 "잘못 잡아준 기자에 감사"

입력
1999.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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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아버지들은 왜 그렇게 노름을 굳세게 했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 아버지도 노름을 굳세게, 완전히 기둥뿌리가 뽑힐 때까지 계속했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 집은 이사를 해야 했다. 노름빚에 몰려 닥달을 당하느니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조용히 사는 게 나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4학년때 흘러간 곳이 마산이다.아버지는 그랬지만 나는 정착해서 살아보려고 열심히 기반을 닦아 공부와 운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마침내 5학년때 반장선거에 출마했다. 나는 선거 몇달전부터 친절과 봉사로 친구들의 인심을 얻는데 주력했으므로 준비된 반장으로서 당선을 낙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때는 별별 일이 다 일어나던 자유당 시절이고 그 곳은 밀수로 흥청거리던 도시 마산이었다. 그래서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지도 모른다.

반장투표가 끝났는데도 선생님이 도무지 개표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오늘은 늦었으니 개표는 내일 한다』. 다음 날 개표결과 나는 떨어졌다. 반장으로 당선된 아이는 밀수로 치부한 것으로 소문난 집 아이였다. 나는 어린 나이에도 세상은 으레 그런 것이려니 하고 상처를 잊었다.

그런데 당시 우리가 세든 집의 주인은 마산일보 기자였다. 훤한 얼굴에 화가처럼 빵모자를 눌러 쓰고 늘 웃음을 띠고 있던 중년신사는 자기 아들과 또래인 동네 아이들을 모아 놓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갑자기 숙제검사를 하는가하면 『이놈들, 일기 잘 쓰나 어디 일기 좀 보자』하며 느닷없이 일기장을 가져오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그 분이 내 일기장을 본 다음 날 마산일보에 가십기사가 났다. 「개표 미뤄, 동심에 상처 줘」. 그날 저녁 죽을 상이 된 담임선생님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어머니께 빌고 주인집 안방에 가서 또 빌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야, 기자라는 직업이 대단하구나. 나도 기자가 되었으면』하는 꿈을 품었다. 물론 그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몇 달 후 우리 집은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날 아침 그 아저씨는 우리 식구에게 한 상을 차려주었다. 기름이 자르르한 하얀 쌀밥. 그것은 마산에서 내가 유일하게 먹어본 쌀밥이었고 지금까지 먹어본 밥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나는 그 이후로는 마산에 가보지 못했다. 4·19때 그 집 앞에 있던 북마산파출소가 불에 탔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내 친구(신성기군)의 아버지, 씩씩하고 정의롭던 기자. 그 분이 참 보고 싶고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한윤수·도서출판 형제 대표·「이 감자야」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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