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옷 로비의혹」사건으로 시민단체와 정치권으로부터 거센 사퇴압력을 받았던 김태정법무부장관이 결국 보름만인 8일 제48대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현직 법무부장관이 한달이 채 못돼 물러난 것은 문민정부시절인 93년3월 딸의 특례입학으로 물의를 빚어 10일만에 전격 사퇴한 박희태(朴熺太)장관(42대)에 이어 두번째다.전남 장흥에서 출생, 호남인맥의 대표주자로 불렸던 김전장관은 부산에서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닌 뒤 여수중_광주고를 나와 영·호남에 걸쳐 폭넓은 인맥을 형성했던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70년 검사로 부임한 뒤 율곡비리 동화은행비자금 사건 등을 총지휘한 「칼날검사」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중학교 동창의 빚보증을 서 집을 날리기도 할 만큼 「눈물」과 「의리」의 사나이였다는 게 그에 대한 지인들의 평가다.
김전장관이 YS시절 호남출신으로는 최초로 검찰총장에 임명된 뒤 97년 대선직전 외압과 유혹을 뿌리치고 「DJ비자금 사건」수사유보를 결정, 현 정부의 출범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DJ 정부에서도 「사정사령탑」을 지냈던 그는 지난해 대전법조비리 사건때 소장검사들의 퇴진압력과 사상초유의 「고검장 항명파동」 등으로 생애 최고의 위기를 맞았으나 특유의 뚝심으로 당시 상황을 수습했다. 하지만 총풍·세풍사건, 야당표적사정수사 시비 등에 휘말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 직전까지 가는 등 수차례 「사선(死線)」를 넘나들기도 했다.
그러나 DJ의 각별한 신임으로 그는 지난달 24일 법무부장관으로 전격 기용되기에 이르렀다. 부인 연정희(延貞姬)씨가 연루된 이번 「고가옷 로비의혹」사건에서도 무혐의로 판명나 「오뚝이」처럼 되살아났으나 결국 대검 전 공안부장의 발언파문으로 39년간의 파란만장했던 검사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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