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대통령이 마침내 김태정법무장관을 경질했다. 조폐공사 파업유도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장관을 경질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고가 옷 로비의혹사건과 결코 무관한 경질은 아니며, 대통령의 체면과 민심을 적절히 어우른 조치라고 보인다.김정길 정무수석은 8일 한 조찬강연에서 김대통령이 민심을 정확히 알고 있으나, 명백한 책임이 없는데도 장관을 경질하는 것은 국정의 안정을 저해하고 인사의 난맥을 야기하기 때문에 김법무장관을 경질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김대통령이 민심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고 있으면서도 김장관의 유임을 고수해왔다는 얘기가 된다. 김대통령의 그같은 판단이 옳으냐 그르냐를 차치하고, 국정의 최고결정권자가 국민의 뜻과 다른 판단을 하고 있었다는 것 자체는 주권재민의 민주주의 이념과는 거리는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6·3재선거에서의 민심이반 현상이나, 시민단체들이 김법무의 사퇴를 요구하는 사태가 왜 일어났는가를 대통령의 주변사람들은 잘 파악하고 있을 터였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자리가 결코 권력의 단맛을 보는 자리는 아니며, 때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살신성인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 자리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대통령이 옳다고 하면 무조건 따르고, 대통령 앞에서 감히 「노」라고 말하지 못했는가를 이번 기회에 보좌진과 집권당의 관계자들은 깊이 성찰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권관계자들은 정권의 도덕성 문제에 좀더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원천적으로 깨끗하니까 정권의 도덕성은 애시당초 문제될게 없다」는 자세는 오만하게 비쳐질 수 있다.
이른바 정권의 실세들은 권력의 나태와 오만함이 없는가를, 고위 공직자는 자신과 주변이 청정한가를 부단하게 살펴야 하는 것이다. 권력의 오만함이 결국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한다는 사실을 바로 전정권의 예에서 확실하게 경험했다.
법무장관의 경질로 옷 로비의혹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깨끗이 씻어진 것은 아니다. 문책은 있으나 사건의 진상은 아직도 명쾌하게 밝혀졌다고 할 수 없기때문이다.
옷 사건과 관련된 각종 의혹들이 시중에 더욱 난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부 관계자들은 직시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국회차원의 국정조사가 이뤄질지 여부를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한편 정권이 민심을 수용했으니, 그 반대급부의 차원에서 「통치사정」을 해나가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온당하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사정은 미래지향적으로 국정의 기강을 바로잡는 차원에서만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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