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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불편 참음은 미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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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불편 참음은 미덕이 아니다"

입력
1999.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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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간 45주년 특집] 불편한 사회/특별기고 송보경 -우리는 요즘 마음도 몸도 불편하다.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심신이 괴롭다. 불편이 없어서가 아니라 늘 참아 견디지만 분통은 참기 어렵다. 불편을 참는 것은 이골이 났지만 분통은 언젠가는 터지고 만다.

최근 선거에서 시민들은 분통을 표출했다. 그러나 우리는 불편을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너무 참아 오히려 문제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무엇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가.

첫째 크고 작은 약속을 지키지 않아 불편하다. 불편한 것을 해소하겠다고 약속했으면 해야지 미루면 처음에는 불쾌하고 이것이 계속되면 분통이 터진다. 개인도 온다면 온다는 시간에 오고 준다면 준다는 만큼 줘야 한다.

지킬듯 지킬듯 하면서 잘 지켜지지 않아 많은 소비자가 불편을 겪는다. 대표적인 것이 제조물책임법과 집단소송법 제정을 미루는 것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약속하면서도 번번히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다음 정부로 슬그머니 넘겨왔다. 기업·정부관료의 정부가 아닌 「국민의 정부」는 어떻게 할 지 지켜볼 일이다.

할부금융회사들이 처음의 계약을 깨고 부당하게 이자율을 인상해 소비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 계속 승소하고 있다. 10만여명이 주택할부금융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고 있지만 개인이 일일이 소송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몇년전의 백화점 사기 바겐사일도 같은 사례다. 수많은 사람이 바겐세일에서 사기를 당했지만 승소한 50여명만 보상받을 수 있었다. 이것은 불편을 넘어 인적 물적 자원의 낭비이다.

집단소송법이 있으면 이같은 낭비나 불편은 없다. 소비자가 피해를 보았을 때 제조자가 제품의 결함이 없다는 것을 밝히도록 해야지 무슨 수로 소비자가 제품의 결함을 밝히는가. 제조물책임법도 속히 제정돼야 한다.

둘째 행정편의주의와 집단이기주의 때문에 불편하다. 전문인일수록 자신들만의 용어를 암호처럼 사용한다. 특히 의료계와 법조계가 그렇다. 양쪽 모두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미흡하다. 최근 어떤 소비자가 판결문의 내용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는 지적을 변호사에게 했다. 그랬더니 그 변호사도 어느 때는 판결문의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용어는 소비자에게는 마치 경매시장에서 쓰는 경매인의 암호처럼 생소하다.

셋째 정확히 알리지 않아서 불편하다. 우리 행정서비스는 정확하게 알려주는데 인색하다. 대표적인 것이 교통표지판이다. 미리 알려 운전자가 준비하도록 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우리 교통표지판은 길을 알고 있는 사람은 찾을 수 있지만 이것만 보고는 찾아가기 어렵다. 예를 들어 서울시는 혼잡통행료를 받으면서 어느 터널이나 도로가 혼잡하다는 표시를 해주지 않아 시민들의 불편을 덜지 못한다.

넷째 시민의식이 엉망이어서 불편하다. 창피하지만 한두가지가 아니다. 차선 끼어들기는 예사다. 게다가 신호도 없이 획 끼어들어 운전자를 놀라게 한다.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것을 말리지 않는 부모나 교실에서의 휴대전화 사용금지를 교수가 설득하지 못해 대학당국이 나서는 것 모두 딱한 일이다. 학교에서 내준 미술숙제를 미술학원에서 몇만원 주고 대신해주는 곳이 우리나라 말고 어디 또 있겠는가. 자신의 옷값을 남에게 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사람이나 자식 미술숙제를 돈주고 남에게 맡기는 사람이 무엇이 다른가.

다행인 것은 이들이 소수이고 다수는 그들과 다르다는 것이다. 이제는 다수의 그들이 불편을 참는 미덕보다는 불편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송보경·宋寶炅·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회장·서울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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