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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흐느적' 박정태 '타타타'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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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흐느적' 박정태 '타타타' 드라마

입력
1999.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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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의 아픔」과 「연속의 아름다움」.그는 두번이나 발목을 부러뜨렸다. 한번은 왼쪽을, 또 한번은 오른쪽을. 그래서 그의 야구인생 파노라마에는 두차례의 깊게패인「단절」이 자리했다. 그리고 두번 모두 거짓말처럼 훌쩍 훌쩍 뛰어넘었다. 연속경기 안타신기록- 야구라는 스포츠에 있어 가장 가치있다는「연속의 미」를 구현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그래서 박정태(롯데·31)의 이름 석자앞에 「오뚝이」「악바리」라는 별명을 올려놓고 「인간승리의 대명사」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172㎝ 79㎏. 박정태의 체구는 프로야구선수로는 작다. 그래서 부산중·동래고교시절 『저 체격으로는 안된다』는 얘기를 귀가 따갑게 들어야했고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구멍가게를 호구지책으로 삼아온 홀어머니 김덕순씨는 『막내를 제대로 못먹여서…』라며 가슴을 뜯어야했다.

남들이 보기엔 이상할 수밖에 없는 박정태의 타격자세. 흐느적 흐느적대고 방망이를 빙빙 돌려대는 이 폼도 따지고 보면 작은체구의 핸디캡을 극복하려는 고민의 산물이었다.

경성대 시절. 그는 왼쪽발목을 부러뜨렸다. 때문에 이전의 고생을 고스란히 보상해줄 것 같았던 태극마크를 눈앞에서 포기해야했다. 눈물 보이는 것을 수치로 아는 「부산사나이」박정태지만 입원실의 시트가 젖을 정도로 울었다. 4개월여의 입원. 첫번째 단절이었다. 그러나 그는 2년뒤 보란듯이 대표선수로 복귀, 부동의 3번타자로 펄펄 날았다.

두번째 단절. 91년 프로에 몸을 담아 2년연속 골든글러브를 거머쥐며 절정의 기량으로 치닫던 박정태는 93년 5월 사직구장 태평양전서 오른발목을 부러뜨렸다. 2루 슬라이딩을 시도하다 베이스를 잘못 디디면서였다.

심각했다. 이전엔 태극마크로 끝났지만 이번엔 야구인생을 통째로 반납해야 할 것 같았다. 1년여동안 4차례의 수술. 합병증이 도지며 복귀는 고사하고 제대로 걸을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그 누구도 재기를 믿지 않을때 박정태 혼자만이 입원실에서 아령을 들었다 놓으며 멀어져가는 그라운드에 매달렸다. 「오기」와 「집념」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당시의 박정태를 꼿꼿이 세워놓고 있었다.

2년의 시간이 그를 모두의 기억에서 지워버린 95년. 그는 다시 그라운드에 섰다. 그리고 방위복무를 병행하면서 3할대의 맹타를 휘둘렀고 마침내 99년, 연속안타 신기록의 주인공 자리에 이름 석자를 올려놓았다.

대기록을 경신하던 4일에도 그랬고 한경기 한경기 기록을 쌓아가는 요즘에도 타석에 들어선 박정태는 덤덤하다. 피를 말리는 기록의 압박감이 상당하련만 깊은 시련의 골을 건너온자에게만 있는 여유때문이리라. 그는 야구만이 아니라 인생에서도 「베테랑」이다. 이동훈기자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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