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이후 「구속문인 제로시대」가 된 것은 지난해 여름이 처음이었다. 박노해씨가 지난해 광복절에 마지막으로 특별사면된 것이다. 가장 전투적이던 시인이 7년만에 성직자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돌아왔다. 석방되자마자 매스컴의 스타가 된 그를 이제 「노동자 시인」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강렬한 투쟁과 고통스런 영어(囹圄)생활을 체험하며 변모한 그의 제2기 문학은 롱펠로의 시처럼 따스한 교훈시로 넘어가고 있다.■구속문인은 없어졌으나, 망명 문인은 있었다. 이 시대의 마지막 망명객은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52)씨였다. 그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무역회사 유럽지사에 근무하다가 79년 자신이 참여했던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인민위원회(남민전)」 사건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프랑스에 망명했다. 관광안내원과 택시운전사 등을 전전하며 이국에서 뿌리내리지 못하는 자신의 삶과 조국에 대한 생각을 성찰한 것이 이 책이다.
■홍씨는 두 번째 책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를 출판하면서 오는 14일 일시 귀국한다. 20년만의 귀국이다. 홍씨는 새 수상록에서 한국과 프랑스의 정신적·문화적 차이를 섬세하게 대조시키고 있다. 그는 『나무 하나하나는 보지 못했지만, 한국 사회라는 숲은 20년 동안 보아왔다』고 말한다. 이번 귀국길에는 한국의 젊은이들과 많은 대화를 갖고 싶어 한다. 그에게서 오랜 기간 망명한 탓에 한국의 현실정치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성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귀국을 앞두고 그는 『기억에서 아스라이 사라졌던 악몽이 살아나게 되겠지만, 봄바람에 날리는 먼지조차 그립다』고 말했다. 그의 귀국은 각계 인사 90여명이 참여한 귀국추진위원회의 도움으로 성사되었다. 군사적 압제시대가 남긴 유산을 청산하고, 그 시대의 희생자들에게 인생을 정리할 수 있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줄 때가 됐다. 홍씨의 경우 처럼 20년이 걸려야 한다면 너무 길다. /박래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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