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는 왜 소설을 쓰는가? 문학 그 자체보다 문학의 죽음에 대한 논의가 더 무성한 이즈음, 소설과 소설 쓰기의 의미에 대해 말한 두 권의 책이 눈길을 끈다. 미국작가 폴 오스터의 「굶기의 예술」과 일본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문학동네 발행)다.폴 오스터는 「뉴욕 삼부작」 「미스터 버티고」 등 국내번역된 작품으로 잘 알려진 작가. 「카프카적 아웃사이더」로 불리며 줄리안 반즈와 함께 현대 영어권 작가군의 양대 산맥으로 불릴 정도로 비중있는 작가다. 마루야마 겐지는 66년 스물 한 살에 사상 최연소 기록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고 등단, 이후 일본의 오지에 틀어박혀 외부와의 관계를 끊고 글쓰기에만 전력하고 있는 특이한 작가로 「물의 가족」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 등이 번역돼있다. 폴 오스터는 자기를 앞서간 선배작가들의 작품 다시 읽기를 통해, 마루야마 겐지는 스스로의 생활을 통해 각각 문학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답하고 있다.
『문학이 가진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언제나 단 한 사람이 단 한 권의 책과 조우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그곳이 내 생각에는 인간의 의식들이 만날 수 있는 가장 친밀하고 은밀한 장소다. 자신이 모르는 이방인의 의식 속으로 잠입해, 우리 인간의 공통적 휴머니티를 발견하는 순간은 오로지 그때뿐이다. 그래서 문학은 절대로 죽을 수 없는 것이다』 폴 오스터는 「의식의 가장 은밀한 소통」으로 문학의 존재가치를 해명한다. 「굶기의 예술」은 그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여러 작가들, 카프카나 크누트 함순 정도를 빼고는 일반독자들에게 거의 이름이 알려져있지 않은 로라 라이딩, 루이스 울프슨, 찰스 레즈니코프 등 작가들에 대한 에세이다. 모국어인 영어가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워서 프랑스어로 글을 쓴 루이스 울프슨 등 한결같이 주류에서 벗어나 변방에서 글을 썼던 이들의 의식을 해부함으로써 폴 오스터는 당대 서구문학과 문학 그 자체의 의미를 다시 묻고 있다.
마루야마 겐지의 글은 생계를 위해 「돈」에 휘둘려 문학을 팔아먹는, 너나없는 현실에 대한 준엄한 경고처럼 읽힌다. 그가 비판하는 일본문단의 현실이 그대로 우리 문단의 실정으로 보인다. 그는 소설은 마음이 아니라 몸으로 쓰는 것이라 말한다. 『세상에 대해, 혹은 모든 집단과 조직에 대해 홀로 버틸 대로 버티며 거기에서 튕겨나오는 스파크를 글로 환원해야 한다. 가장 위태로운 입장에 서서 불안정한 발밑을 끊임없이 자각하면서 아슬아슬한 선상에서 몸으로 부딪치는 그 반복이 순수문학을 하는 사람의 자세인 것이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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