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거 참패의 충격파에 휩싸인 4일 아침 여의도 국민회의 당사의 일정표에는 「오전 10시 공동여당 합동의총 취소」라고 기록돼 있었다. 『재선거 참패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분출하지 않겠느냐』는 기대와 함께 이 행사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취소 배경이 궁금했다.국민회의측의 해명은 뜻밖이었다. 의총을 소집한 목적 자체가 예상을 크게 빗나갔다. 옷 로비사건 등 최근의 정국 현안은 처음부터 「논외(論外)」였다. 『통일·외교부장관을 불러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방러 성과를 설명하기 위한 자리였다』는 것이다. 취소 이유는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의 한 관계자는 『선거도 졌는데 괜히 의원들을 한 자리에 모아놨다가 분위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를 것 같아서…』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민심은 흉흉한데 여권 핵심부가 집안 식솔들을 상대로 한 대통령의 외유성과 전파에 먼저 생각이 미쳤다는 사실이 당혹스럽다. 김대통령이 귀국하자마자 『의원들을 한 자리에 모아 밤을 새워서라도 여론과 민심을 진정시킬 수 있는 대책을 토론, 결과를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면 어땠을까.
여권 지도부의 행태는 더욱 한심스럽다. 민심이반이 표로써 확인된 이상 일부러라도 민의의 대변자들인 의원들을 한 자리에 모아 진솔하게 의견을 나누는 기회를 마련했어야 했다. 그러기는 커녕 오히려 잡혔던 일정마저 「후환」이 두려워 취소해버린 것이 아닌가 싶어 뒷맛이 영 씁쓸하다. 정치권 안팎에서 『여권에 과연 DJ에게 NO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는 의문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음을 여권 지도부는 알고나 있는지.
/신효섭기자 h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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