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수가 제주성에 입성한 뒤의 얘기는 「사족」이라 생각했다. 그것까지 다 들어가면 영화가 아니다. 역사의 나열이지』이 한마디로 박광수 감독(44)의 「이재수의 난」을 만든 이유는 분명해진다. 애초 과장과 미화를 통한 영웅주의도, 정치적 권력획득도, 반역의 역사를 혁명의 역사로 바꿀 생각도 없었다. 『가난에 찌들려 민란이 일어났다』는 것도 그에겐 진부하다.
굳이 100년전으로 돌아간 것은 역사의 반복과 유사성 때문이다. 『외세로 벽이 무너지면서 피폐해지고 갈팡질팡하는 한 변방민중들. 그들을 냉전이 끝나 동북아 균형이 깨진 지금의 우리와 연결하고 싶었다』
박광수 영화가 늘 그렇듯 「이재수의 난」에서도 그는 역사와 현실을 보는 자신의 시선을 설정했다. 『까마귀의 존재. 이재수일 수도, 현재의 관객일 수도 있다.
역사의 기록자인 그 까마귀는 어느 쪽도, 누구도 편애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재수 하나가 아닌 시대의 비극을 고민하는 여러 인물들이 부각되고 선·악의 단순한 이분법을 배제했다』.
그것이 오히려 영화를 혼란스럽게 하지만 『절대 나쁜 사람이란 없다』는 박광수 스타일의 휴머니즘이라고 했다. 영상미학을 추구하는 그로서는 인공조림이 많아 제주의 자연과 인간을 욕심대로 배치시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날씨변덕으로 촬영이 늦어지니까 처음과 달리 낫까지 들고 나온 주민의 항의와 「영화 좋아하네」라는 빈정거림을 들으며 어렵게 마쳤다』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